네잎 클로버

행운 사세요~~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네잎 클로버. 진짜로 행운을 가져다주는 걸까? 사람들은 세 잎이 아닌 흔치 않은 네 잎이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굳게 믿어 초록 풀밭에서 네잎 클로버를 열심히 찾아다닌곤 한다. 실제로 남편도 클로버가 있는 풀밭이 있다 하면 열심히 네 잎이나 오 잎 클로버를 반드시 몇 개씩은 찾아내곤 한다.

난 이제껏 평생을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고작 2번 정도 찾은 게 전부인데, 신랑은 네잎 클로버는 물론 다섯 잎 클로버까지도 한자리에서 4, 5개까지 찾아내 놀라움을 주곤 한다. 신랑은 그렇게 찾은 클로버잎을 주면서 잘 보관하라고 하지만 도통 그런 것에 둔감하고 세심함이 부족한 나는 늘 대수롭지 않게 여겨 버린다. 그래서 결국 차 안에다 또는 옷 주머니에 넣어뒀다 잊어버리고 그사이 귀한 잎들은 마르게 되어 결국 버리는 꼴이 된다. 신랑은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그러니 복이 저절로 도망간다”고 핀잔을 주곤 한다.


경서도 신화쯤으로 여기는, 보이는 것이 전부라 굳게 믿는 무신론자인 그는 아주 오랜 전부터 내려오는 미신이나 무속신앙, 풍수지리는 철저히 믿고 지키는 편이다. 신을 믿지만 미신은 신경쓰지 않는 내 입장에선 참으로 아이러니 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장면들이 많은 배우자이다.


그런 아빠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 딸애도 네잎클로버에 얽힌 행운을 믿는 눈치이다. 행운을 가져다줄 거라는 네잎클로버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믿음은 대단하다. 실제 풀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기저기 그림이나 조각으로 클로버 모양을 물건에다 새겨놓았다.

우리집 수저 한 세트에 바로 네잎 클로버가 숟가락 젓가락 끝에 새겨져 있다. 그 숟가락 세트를 구입할 때에도 딸애는 예쁘다는 말 외에는 별͡말은 없었으나 1년이 더 지난 오늘 아이는 식탁에 올릴 숟가락을 챙기면서 내게 물었다.

“숟가락에 있는 네잎 클로버도 행운을 가져다 줘?”

나는 속으로 약간 놀라면서 “그렇지”͡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제천 할머니 집에 그려져 있는 네잎 클로버도 행운을 가져다주냐고 물었다. 난 그 클로버 그림이 어디 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지만 “그렇다”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딸은 네잎 클로버는 그럼 그림으로만 봐도 행운이 오냐고 결론적으로 물었다. 네잎 클로버의 행운 따위는 그닥 신뢰하진 않는 나지만 아이의 순수한 믿음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래 맞아”͡라고 대답해주었다.

아이는 그제서야 숟가락을 자기 자리에 올려놓았다. 아마 앞으로도 네잎 ͡클로버가 새겨있는 숟가락 젓가락은 딸애 차지가 될 것이고 그런 생각을 한 딸애가 속으로 참 대견하고 예뻤다.


아이가 잠든 사이 남편에게 이야기해주니 그 또한 놀라워했다. 다른 집 아이가 그런 질문을 했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발달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가 그런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자체가 엄마로서 너무 대견하고 뿌듯하게 느껴짐을 이루다 표현할 수 없었다.


아이가 평소 궁금해하는 것들은 주로 자신만의 관심거리로, 생각지도 못한 세밀한 부분까지 여러 번, 아주 오랫동안, 반복해서 물어본다. 또 그 질문에 내가 모르겠다거나 명확하게 답을 못 해주면 답이 정확하게 나올 때까지 아주 집요하게 끝까지 물어보는 탓에 엄마인 나를 지치게 만들곤 하는 아이였다. 비유나 은유, 추상적 개념은 도통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 아이라 설명해주기 정말 어려운 부분이였다. 헌데 오늘 그 추상적인 생각의 첫 단추를 열게 된 것 같았다. 늘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 같아 불안했던 나의 마음에 작은 위로와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순간이었다.


냇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는 것 마냥 늘 초조하고 불안하게 이 아이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를 대할 때 아이를 존중하고 믿어주기보다는 의심하게 되었다. 자기결정권을 아이에게 주지 않고 내가 대신 다 해줘 버리는, 겉으로 보기엔 헌신적인 엄마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이를 무시했던 엄마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가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이 아이도 할 수 있고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끼게 해준 정말 나에게는 네잎 클로버가 주는 행운이 느껴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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