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애도 받는 이들

by 전두엽

처음 선배랑 현장 취재를 나선 게 3월 28일이었습니다. 딱 세 달 걸려 치료감호소 기획이 끝난 거죠. 야심차게 7회로 준비했던 기사들은 5회로 쪼그라든 채로 지면에 실렸습니다. 마지막 회는 거기서 더 줄여야 하는 바람에 부장이 주말 내내 기사를 붙잡고 있어야 했고요.


약자와 병자가 득실거리는 불편한 기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국장단은 물론이었습니다. 기사가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 자리를 함께 했던 한 남자 상사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우리 기획의 제목이었던 '치료감호의 눈물'을 말하면서 "눈물이 아닌 웃음 같은 걸 쓸 수는 없느냐" "왜 그 부서는 매일 화가 나 있느냐" 따위의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원래 그런 분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기에 별 대꾸 하지 않고 웃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곱씹고, 다음날 팀원들에게 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해볼수록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건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었으니까요. 내가 평생을 걸고자 하는 가치를 송두리째 꺾으려는 말과 다름이 없었으니까요.


치료감호 기획 첫 회가 나간 날은 어리둥절했습니다. 반응이 너무 좋아서였습니다. 첫 회 메인 사례 주인공은 조현병 증상으로 인해 경범죄를 저지르고 형량 이상을 치료감호소에서 살다가 나온 분이었습니다. 출소다운 출소가 아니었고요, 치료감호소 안에서 폐암이 발견돼 퇴소 조치를 당한 것에 가까웠습니다. 취재중 갑자기 돌아가셨고, 우리는 제도의 무심함이 죽음을 낳았다고 기사에 썼습니다.


사회부에 있을 때 꾸역꾸역 여성・장애인・노인・아동・외국인 얘기를 쓰는 동안 독자의 공분을 일으킨 거라곤 "왜 이런 기사를 쓰느냐"는 지점 뿐이었습니다. "내 삶도 팍팍한데 누굴 챙기냐" "도대체 무슨 차별을 당한다는 거냐"는 반박은 숱하게 반복되는 레퍼토리였습니다. 다행히(?) 견습 기자 시절, 공들여 취재한 기사 반응이 예상한 바와 달리 냉정할 때마다 사수 선배는 "원래 댓글은 읽는 것 아니다"라고 조언을 해줬습니다. 그 때 이후로 댓글은 당연히 읽지 않았습니다. 댓글이 실제 여론을 반영하는 것도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다름아닌 조현병 환자 기사에 선플이 줄줄이 달린 겁니다. "간만에 기사다운 기사 읽었다"고, "앞으로도 사회 어두운 곳을 밝히는 기자가 되어 달라"고.


제가 쓰는 기사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지는 오래 됐습니다. 깨달은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좌절과 실망이 절 삼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산적한 과제 앞에 좌절과 절망이란 새삼스럽다는 것을 어느 순간 느꼈습니다. 대신 기사는 평생 어딘가에 남으니까요, 수 년 후에라도 누군가가 공부를 하거나 법안을 만들 때, 혹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가 세상에 있긴 했는지 궁금할 때 제 기사가 요긴하게 쓰인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반응이 왜 좋을까요" 하고 묻는 같은 팀 선배에게 "사람이 죽었다고 하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라고 냉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그런 게 아니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이번만큼은 사람들이 정말 약자와 병자에게 조금은 후해졌고, 그 관심을 지피는데 이 기사가 요긴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남은 회차인 2회부터 5회까지는 사망자가 없었습니다. 치료감호소에 갔던 조현병 환자와 발달장애인들 모두 그대로 살아서 자기 삶을 증언했습니다. 그러자 주제도 문체도 달라진 게 하나 없는 기사에 대한 반응이 정반대가 됐습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너네들이 나와서 행패를 부리면 우리는 무슨 죄냐" "저런 애들 오히려 격리해 놔야 한다" "묶어놔야 한다" "살려두면 안 된다".


첫 회가 반응이 좋았던 이유는, 어쨌든 그 조현병 환자가 이젠 세상에 없다는 게 독자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서인 것만 같았습니다.


물론 취재 당시 무서울 때가 있었습니다. 현관문이 닫힌 그들 집 안에 무방비로 앉아있는데, 환청으로 인해 혼잣말을 하며 줄담배를 피는 저들을 보자면, 이러다 담배빵이라도 당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판결문에 낱낱이 적혀 있는 그들의 돌발행동 종류를 숙지하고 가면서 '우리 앞에서 돌발행동이 나오면 어쩌지' 싶은 생각이 스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들이 현관문 열고 뛰쳐나가는 일이 없기만을, 우릴 해치지 않기만을 요행에 기대는 것도 정도껏이잖아요. 그래서 이번만큼은 "우리 더 이상 이들을 세상에 없는 셈 치지 말고 터놓고 얘기해보자"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어쩌면 첫 회 반응 때문에, 이번엔 진짜 가능할 지도 모른다고 저답지 않게 기대해 버린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나도 모르게 기대가 컸고 그래서 실망이 컸나보다. 첫 회 이후 좋았던 반응에서 역설적으로 느낀 불쾌함을 설명하기 어려워 혼자 성급하게 원인을 진단하려던 차였습니다. 우리 부장이 쓴 칼럼을 뒤늦게 발견했습니다. 운 좋게도 그 칼럼에 제 불쾌함을 뚝딱 요약해내는 문장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장애인은 살아있으면 멸시받고 죽어야 애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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