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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Dec 16. 2021

책을 읽다가 종점까지 가버렸다.

독서

오늘 새벽에 글을 썼다. 누가 보면 베스트셀러 작가인 줄 알겠다. 마감을 앞두고 불야불야 글을 쓰는 것처럼 퇴근 후에 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키보드다. 새벽에도 거의 완성되어가는데 자판을 누르지 말아야 할 것을 눌렀는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글을 썼다. 얼기설기 꿰매서 입는 흥부네 자식들 옷처럼 그렇게 겨우 매듭을 지었다. 그런데 무슨 정성인지 퇴근 후 거의 한 시간여를 글을 썼는데 또 사라졌다. 안 눌러야 할 키를 누른 것이 사단의 원인이다. '아이고 모르겠다. 관 두자.' 이런 마음인데 어디까지 쓰게 될지 모르는 글을 다시 또 쓴다. 부디 끝까지 매듭을 짓기를 바란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몇 년씩 기간이 되면 인사이동을 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 다니던 직장은 버스를 왕복 두 시간 정도 타야 다닐 수 있었다. 원래 비위가 약하고 멀미를 잘해서 그곳으로 다니게 된다는 게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죽을힘을 다해서 참고 다녔다. 매번 식은땀으로 온몸이 젖었었다. 다행히 오물을 토하거나 그러진 않았었다. 그렇게 한 달여를 버티다가 정말 그만둬야겠다. 이러다 죽겠다. 그런 상황까지 갔었다. 한 일 년은 그렇게 죽을 둥 살둥하게 다녔다. 그렇게 힘들었던 것도 시간이 약이었던지 점점 적응을 하게 되어 오 년을 다녔다. 그냥 버스 타는 것만도 장한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다가 힘들면 좀 쉬었다가 읽곤 하면서 어느 해는 오십여 권을 읽었었다. 독서 삼매경에 빠져서 종점까지 가기 일쑤였다. 그렇게 지내던 시간들도 이제 추억이 되었다.  


먹방을 보면 음식을 계속 먹다가 끊기면 식욕을 잃게 되듯이 뭔가를 하다가 손을 놓으면 다시 시작하기가 여간 힘들다. 그래서 아침마다 다니는 뒷산도 멈추지 않고 다닌다. 한번 안 가면 계속 가기 싫을 것만 같아서 비 오는 날만 기쁜 마음으로 쉬고 정말 쉬지 않고 다닌다. 그런데 요사이 책을 읽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 비문학 책을 힘겹게 몇 권 읽고 나서 책 읽기가 싫어졌다. 본인의 취향대로 읽었어야 했는데 무리를 한 것이다. 그 좋아하고 재밌는 소설류를 읽었어야 했는데 뭔가 변화를 갖기 위해 찾은 비문학이 독서의 흐름을 깬 것이다. 독서를 쉬는 것도 어쩌면 필요한 시간일 수도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면 작가별로 책을 읽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박완서 작가다. 그분이 돌아가시자 정말 슬펐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시기부터 내게 귀감이 되어서 그래서 그분의 책을 거의 안 빼고 다  읽었다.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작가는 신경숙 작가다. 어쩌면 그 두 분은 닮은 구석이 있다. 마치 햇살 좋은 담벼락에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듯이 글을 쓴다. 그리고 그렇게 사실적으로 모든 가족들을 언급해도 될까? 하는 걱정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런면들이 어쩌면 매력포인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조정래 작가의 작품도 거의 다 읽었다. 워낙 전집형으로 많은 책을 썼기에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 읽기 위해서 밤을 밝히며 읽었었다. 대단한 대작들이 많다. 그리고 좀 색깔이 다른 김진명 작가의 작품도 거의 읽었었던 것 같다. 이분들의 작품은 믿고 보는 작품들이었다


십 대 때는 마음이 동하면 어쩌다 한 번씩 책을 읽곤 하였다. 그러다가 이십 대가  되어 마음먹고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성품이나 생각의 폭이 넓어질 것만 같다는 생각에서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은언니가 책 읽기를 좋아해서인지 양장본 책을 엄청 사서 보냈다. 그것도 조선왕조실록 등 지금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 책들이 어마어마했었다. 우선 집에 있는 책부터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마어마한 양을 읽었다. 그리고 세계문학전집을 모조리 읽었었다. 정말 배부르게 읽었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부터는 내가 어릴 적에 못다 읽었던 동화책을 원 없이 읽었다. 내가 읽고 싶어서 읽은 게 아니라 부모가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 정서발달에 좋다는 얘기를 들어서 정말 원 없이 한없이 읽었었다. 어떨 때는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었고 어떨 때는 그냥 읽고 싶어서 읽었다. 그런데 종합적으로 보면 난 눈에 띄게 인간 자체가 멋지게 변모했다거나 뭐 가시적인 효과는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문학 이주의 본인 취향에 충실한 독서를 했기에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고 그러지 않았나 보다.



독자가 책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한 작가의 일생을 내게로 가져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땀과 고뇌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책들을 재밌네 덜 재밌네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대할 때가 있다. 참 죄송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읽었다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므로해서 시야가 넓어진 건 사실이다. 계속 몰랐을 일들을 알 수 있게 되는 과정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알고 보면 책은 나의 스승이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모두 내게 도움이 안 된다고도 할 수 없다. 알게 모르게 나의 피와 살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쉼 없이 책을 읽어야겠다. 어쩌면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마음처럼 늘 노안이 안될 수는 없을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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