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바쁘다. 서랍 속에 있는 편지들을 죄다 읽으면서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연락할 길을 찾는 중이다. 정말 보고 싶고 오래오래 함께 추억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다. 예전에 한바탕 찾는 일을 했었으나 못 찾고 말았다. 이름은 김연희 성동구 홍익동이 고향이고 나이는 71년생 지금은 결혼해서 경기도 어디쯤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 것처럼 직장 동료였던 그 친구를 찾고 싶다.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한 후에도 그 친구와 여러 차례 편지를 나눴었는지 여러 통의 편지가 있었다. 편지를 하나하나 읽다 보니 더 그리웠다. 내가 여러 차례 이사를 하였기 때문에 그 친구도 나를 찾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정말 많이 보고 싶다.
가끔 유관순도 잔다르크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씩씩하다가도 그리움에 온 마음이 퐁당 빠지곤 한다. 사람에 대하여 아니면 지난 시간들에 대하여 무한정 그리워하곤 한다. 편지를 뒤적이다가 아이들 어릴 적에 아이들의 대화를 메모해놓곤 했던 그 메모를 찾았다. 웃으면 까먹기 일쑤여서 꼭 메모하기를 권했는데 실천하지 못하였는데 그중 하나를 보았다. 여섯 살 둘째에게 물었다. "아빠랑 할아버지 댁에 왜 같이 안 갔어?""언젠가 아빠가 아빠도 가끔은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안 갔어요.""그런데 동생은 왜 아빠랑 같이 할아버지 댁에 갔어?""동생한테는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는 말씀을 안 하셨겠죠."이런 대화가 적혀있었다. 적고 나니 그렇게 웃긴 건가? 잘못 기억한 건가? 생각보다 웃기지가 않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내 아이이니까 더 애착이 가서 웃기다고 생각한 게 큰 것 같다. 그나저나 하루하루 나이가 속력을 붙기 시작하는지 부쩍 아이들이랑 어릴적에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립다.
새해가 밝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지난해도 마지막 해가 저물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해가 바뀐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고 이상하리 만큼 그 어느 때 보다 해가 바뀐다는 것에 대해 의식을 안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지인과 통화를 하다가 내 남편의 나이가 올해 예순이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완전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다. 내 남편이 올해가 예순이라니? 가족 중에 그 어느 누구도 나이를 의식하지 못했다. 당사자는 알았을까? 나이의 앞 자릿수가 바뀔 때마다 느껴지는 무게감이 말할 수 없는데 예순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더 크게 놀라운 나이가 아닌가 싶다. 혼자 조용히 알면서도 말을 안 했을까? 우리들처럼 해가 바뀌면서 나이도 심하게 바뀐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본인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시절이 하 수상하기도 하지만 석양에 노을이 물들 때 이처럼 울렁거릴까? 집안에 차압 딱지라도 붙여지는 것처럼 이마에 빨갛게 예순이라는 숫자가 붙여지는 것 같은 기분이라니 느끼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무감각이 내 남편에게 외로움까지 안기지는 않았는지 마음이 쓰인다. 그리운 사람을 찾고, 그리운 지난 시간을 추억하면서도 정작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외롭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된다. 뭘 어찌할 수는 없지만 소소하게 말동무라도 해주고 외롭지 않게 그 무게를 함께 느끼면서 위로해줄 걸 미안하다. 인생의 동반자인데 아무것도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이심전심일 거라는 생각으로 늘 챙겨주지 못하는 것 같다.
난 정말 욕심쟁이인지 내가 그리워하는 그 친구를 꼭 찾고 싶다. 당장 보고도 싶고 그 친구를 만나 살아온 얘기도 나누면서 단 둘이 여행도 하고 싶다. 정말 합이 맞는다는 말이 적절할 것 같은 그 친구는 어떻게 변했을까? 곳간 열쇠를 맡겨도 될 만큼 아주 신뢰감 100%의 친구다. 함께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도 있지만 앞으로 든든한 벗으로 서로 의지하면서 살고 싶은 친구라 더 찾고 싶다. 그리움도 사랑이라면 난 그 친구를 사랑한다. 세상에는 따뜻한 사랑도 있고 애틋한 그리움도 있다. 내게 주어진 귀한 인연을 꼭 찾고싶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