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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Feb 11. 2022

낙엽이 되어가는 나를 본다.

  나이가 무섭다.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통증을 느낀다. 강도가 높은 스트레스에는 온몸이 두드러기가 나고 가렵기까지 하여 약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이제 겨우 오르막길을 오른 후 "휴~"하고 한숨을 돌리는데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한다는 건 심상치 않은 일이다. 백 마디 말보다 내게 닥쳐온 현실이 '내가 이제 내리막 길로 접어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제 겨우 오십 중반, 아직은 건강 타령을 하기엔 젊은 나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만 몸이 생각하고는 다른 방향을 향한다. 비단 나만의 얘기가 아니다. 주변에 또래분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 눈을 귀를 다리를 수술하고 또 수술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경우가 많다. 고쳐 써야 할 나이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뭔가를 하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시기를 지나서 열심히 뭔가를 하다가 겨우 여유를 갖고 사는 것처럼 살아볼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할 시간이 되었는데 병치레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건 좀 가혹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아침에 해가 뜨면 저녁에 해가 기울듯이 우리의 신체도 그렇게 기우는 시기가 되었다. 관리라는 걸 해 볼까? 몸에 좋은 게 뭘까? 하면서 두리번거리기가 무섭에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한다. 참 , 시간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소모품도 어느 때가 되면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렵듯이 우리네 몸도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아직은 견딜만하고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 이겨내지만 더 나이가 들면 다가오게 될 아픔들을 잘 극복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할머니가, 엄마가 아프다는 말을 했을 때는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었는데 지금에서야 내가 아프니까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불현듯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슬로건이 생각난다. '맞는 말이다.'라는 정도의 공감을 했다면 이제는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마음껏 사용하다가 이 정도의 나이가 되어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지만 어려서부터 힘든 병을 짊어지고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그 힘든 시간들을 이겨냈을까? 하는 마음까지 든다.


  통증으로 몸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게 되지만 마음도 만만치 않다. 밀려오는 공허함을 감당하기 힘들고 가만히 있는 나를 향해 날마다 나는 물음표를 찍는다. 내가 내게 보낸 물음표가 보석을 깎는 연마기처럼 나를 보석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보면서 초록이 붉게 물들고 그 붉게 물든 낙엽이 갈색이 되어가듯 나는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다.  


  사람에 따라 많이 다르겠지만 내가 나이가 들어서 더 나아진 게 뭐가 있을까? 더 나아진 게 과연 있기는 한 걸까?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비우라는 둥 다양한 말들이 많지만 이미 나는 빈 깡통이다. 가진 것도 없고 뭐 딱히 내세울만한 업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습지만 그래도 다행인지? 어이없는 일인지? 나는 나를 좋아한다. 그런 나는 애석하게도 늙고 있다. 그래서 점점 아픈 곳만 늘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 깜짝깜짝 놀라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싫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는 생각이다. 낙엽도 책갈피에 꽂아 오래 보존하는 길이 있듯이 내 몸도 지금의 상태로라도 오래 유지하면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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