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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Feb 24. 2022

여자가 결혼하는 날에는

결혼

    큰언니가 결혼한 건 사십 년 전 얘기다. 딸만 넷인 우리 집은 동네 어르신들과 모든 친척들이 큰언니 이름을 앞에 붙이고 큰언니의 첫째 동생, 큰언니의 둘째 동생, 큰언니의 셋째 동생 이렇게 불렸다. 큰언니의 영향력은 비교할 게 없었다. 그런 언니가 결혼을 했다. 그 시절의 결혼 풍경은 결혼식은 친척들과 식장에서 결혼식을 하고 마을분들과 인근 동네분들은 우리 집의 마당에 천막을 치고 음식을 대접하고 피로연처럼 행사를 치렀다. 그 마을 행사를 우리 집 대표로 내가 남아서 치렀다. 중학생인 나는 그 일이 어마어마하게 크게 느껴졌다. 축의금도 받았다. 축의금을 짚으로 엮어진 계란 한 줄, 쌀 한 되 뭐 이런 식으로 받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내가 직접 했는데도 실감하기 힘든 광경이었던 것 같다. 큰언니 결혼식날 또 남다른 모습을 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큰언니의 결혼식을 다녀오신 아버지께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작은언니는 작은 형부가 비행기를 사서 비행기 운전을 배워서 처가에 오겠다고 할 정도로 먼 곳으로 시집을 갔다. 결혼식장에서 우리 가족은 모두 울었다. 보고 싶어도 쉽게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하염없이 울었다. 결혼 후 삼십 년이 지났는데 형부가 말하길 명절에 딱 한 번 처가에 왔다고 했으니 걱정이 현실이었다. 그래도 명절이 아닌 때는 종종 왔었어도 물리적인 거리가 마음의 거리가 돼버리는 것 같았다.


  내가 결혼을 할 때는 어땠을까? 나는 결혼하기 몇 달 전부터 '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울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엄마'라는 말을 하거나 듣게 되면 어김없이 눈물 콧물이 홍수를 이뤘다. 어떻게든 안 울어보려고 나를 다잡곤 하여도 막무가내로 눈물이 쏟아졌다. 결혼식 당일은 드레스를 입기 전 신부화장을 하는데 대화 중에 누군가가 '엄마'라는 말을 했다. 눈물이 쏟아져서 다시 화장을 했어야 했다. 그래도 식장에서는 부모님께 인사하는 시간까지는 울지 않고 무난하게 식을 치를 수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첫 아이가 처음으로 유치원 버스를 타던 날 눈물이 앞을 가려 한동안 같은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볼 건데 뱃속에서만 탯줄로 연결되어 있었던 게  아니라 늘 탯줄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가 그날 처음으로 탯줄을 끊고 독립하는 것만 같은 생각에서 그렇게 감정이 폭발했었던 것 같다. 그런 큰아이가 벌써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딸아인데 결혼을 하게 되면 어떨까? 무슨 감정일지 그 시기가 되면 또 얼마나 울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눈물이란 뭘로 구성되었을까? 물과 염분 그리고 슬픔과 기쁨 그것들의 화학적 결합으로 눈을 통해 우리의 몸 밖으로 나오는 액체다. 끈끈한 애정으로 연결된 사이엔 진한 감정의 교감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눈물을 흘리게 된다.


  거슬러 올라가면 결혼은 여자가 남자의 집으로 가서 살게 되었던 전통적인 이유에서 남자보다 여자들이 가족과 이별을 한다는 생각에서 더 많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 그렇게 결혼을 한 여자는 그 시점부터 친정에 '나'를 놓고 오게 되어 '나'보다 '너'를 위해 살게 되고 아이를 낳게 되면 '아이'를 위해 헌신하게 되는 것 같다. '결혼'이란 뭘까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뭘 어떻게 하며 살겠다는 특별한 계획이나 각오가 없었어도 여자는 본능적으로 희생과 봉사를 자처하게 되는 것 같다.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객석의 관중에게 마이크를 주고 말을 하게 했다. 그 여자 관객에게 결혼을 언제쯤 하는 게 좋냐고 물었는데 '희생과 봉사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웃으면서 격하게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여자에게 결혼은 뭘까? 왜 시작부터 눈물이 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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