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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pr 19. 2022

길거리에도 그리움이 있었다.

거리와 나

  그리움이 뭘까? 알고 보면 나와 조금이라도 대면하였던 적이 있었던 사람이나 사물에게서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한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썰물이 점점 밀물이 되는 과정처럼 나의 어린 시절을 소환하여 나를 그리움으로 채우는 경우도 있다. 되돌릴 수 없어서 그리운 건지 그저 앞날을 채워가기 위해서 에너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의 지난 시간들은 그리움이란 불투명 포장지 같은 거로 늘 포장된다.


  참 별일이다. 내가 살던 집을 떠나 이사를 하게 되면 그 동네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보다 내가 살았던 우리집과 헤어지는 게 더 서운하고 애달파했던 기억이 있다. 내 아이들의 동심이 벽에 그려져 있고 한 살 한 살 커가면서 벽에 아이들의 키를 표시해 놓았던 그 집을 떠나야 해서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내가 살았었던 그 집을 지날 때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오늘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햇볕으로 인한 피부 트러블을 약이나 알로에 등으로 해결되지 않아 버티다 버티다 예전 직장 근처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 주사도 맞고 먹는 약 그리고 피부에 바르는 약을 받아 조금이라도 더 나아보고자 그곳을 찾았다. 거의 두 달 만에 날마다 걷던 그 길을 걸었다. 도보로 30분 거리의 옛 직장을 다니던 그 길을 걸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가다가 만난 만두가게 약국 병원 김밥집 마켓 수많은 가게들이 반가웠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도로 자체도 새로 아스팔트를 해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럴 줄 몰랐다. 4년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다니던 그 길이 그렇게 반가울 줄 진정 난 몰랐었다.

   

  무엇일까? 이 반가움이. 날마다 날마다 다니면서 나는 무엇을 하였기에 그들은 날 그리 반기는 걸까? 내가 반가운 건 그들도 분명히 반가울 거라는 나 나름의 합리화를 해도 될 것 같다. 적잖은 시간들을 같이 하면서 그 무생물들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가게며 도로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엄마인 내 눈을 바라보면서 "엄마, 엄마 눈에 내가 있어요." 했던 것처럼 나는 낯익은 거리의 모든 것들에게서 나의 흔적을 발견하고 말았다.


  남달리 넘치는 감성은 내가 살던 집이며 내가 다니던 거리들에게 까지 나를 기억하라고 강요했던 걸까? 내 추억으로 가득 채워진 내 집, 멍 때리며 걷다가 어느 날은 아이 셋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들의 미래를 기도하다가 어느 날은 그날그날 할 일들을 생각하며 걸었던 그 거리를 어찌 반가워하지 않겠는가? 어느 날은 나무 위에서 노랗게 살랑거리던 은행나무잎이 비가 오면 금세 땅바닥에 찰싹 붙어 황금길을 만들었던 가로수에 연녹색 새싹이 움트고 있다. 그들이 내게 묻는 것만 같았다. "잊으셨었죠? 이 거리를?"라고. 오늘 다시 찾기 전까지는 정말 잊었었다. 그냥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그들과 헤어졌었다. 그들에게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이렇게 반갑고 그리운 곳인 줄 몰랐었다.


  언젠가 우리 큰아이가 읽던 책중에 정확한 책 제목은 모르지만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가 중요하다.'라는 의미가 느껴지는 책이었는데 그 제목을 보면서 그냥 반사적으로 반감을 느꼈었다. '오롯이 나는 나이지 뭐 그게 중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거북했었다. 그런데 십여 년이 지나고 난 지금은 내 주변에 누가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가 중요했다. '내가 그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기에 내 주변에 있는 걸까?' 하는 약간은 더 진일보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거울을 아무리 봐도 내가 봐야 할 나를 못 알아보는데 내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주변인들에게 나를 흡입하게 한다. 그런 후 나와 물리적인 거리를 갖게 되면 나는 내 마음대로 그들을 여한 없이 그리워한다.


  내가 맺은 관계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시간과 공간을 지나서는 '그리움'이 된다. 이사하기 전에 살았던 우리 집이나 내가 걷던 거리까지도 나의 '그리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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