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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Dec 03. 2022

세대가 바뀌는 걸 체감한다.

김장

  12월, 새 달력을 챙겨 놓고 한 달을 살아낸다. 물정 모르고 그냥 여차저차 하다 보면 새로운 해의 3월이고 4월이고 그런다. 어쨌든 한 해의 변화는 쉽게 체감한다. 세대가 바뀌는 걸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요즘 불쑥 세대가 바뀐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저 아이가 어떻게 밥은 해 먹을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을 엄마와 두 언니들이 결혼한 내가 다 들을 수 있게 걱정을 했었다. 통 반찬 다운 반찬을 해먹은 전적이 없으니까 마땅히 할 수 있는 걱정이었다. 갖 결혼한 나는 서점에서 반찬 만드는 방법 책을 샀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식자재를 구입해서 책을 읽어가면서 만들었었다. 혼자서도 만들고 남편과 함께도 만들었었다.


  그렇게 주부가 되어 내년이면 딱 삼십 년이 된다. 지난주 일요일엔 김장을 했다. 다 함께 모여서 했던 거 말고 온전히 독립적으로 혼자서는 두 번째 했다. 마나 시어머니께 의존하던 김장 담는 일을 한 번 하고 자신감이 생겨서 올해도 온전히 내 힘으로 만들었다. 누구보다 스스로 놀라웠던 건 스물다섯 가지의 재료를 넣어서 배추 소를 만들어서 간도 보지 않고 버무렸는데 간이 딱 맞는 거였다. 아주 놀라운 일이고 일취월장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탄생한 김장을 우리 아이들은 물론이고 동생, 시부모님, 이웃, 직장 동료들과 두루 나눠먹었다.

  

 반찬 만드는 법 책을 펴놓고 한 줄 한 줄 읽어가며 따라 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삼십 년 세월이 다 되어서 제대로 된 엄마 노릇을 하게 생겼다. 멸치젓, 새우젓을 사서 사용했는데 앞으로는 직접 담가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김장은 물론 이런저런 반찬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보내고 하면서 반찬가게 주인들 보다 내가 더 자주 반찬들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


  부모님들께서는 병석에 누워 계시기도 하시고 너무 연로하셔 거동이 힘드시니 김장을 하실 형편이 안되시게 되어 자연스럽게 혼자서도 척척 해내야 하는 형국에 이른 것이다. 특별히 잘해서도 아니고 먹는 음식이라 온전히 사서 먹을 수 만도 없어서 직접 만들게 되었다. 세월에 떠밀려서 생존을 위해 과감하게 도전했다.


  우리 아이들은 어쩌면 반 강제로 선택의 여지없이 내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 어려서는 도넛, 고구마튀김, 피자, 치킨, 만두 등의 간식도 직접 만들어서 먹였다. 좀 솜씨 있는 엄마를 만났더라면 더 훌륭한 음식을 을 수 있었을 텐데 부족한 솜씨로 음식을 만들어서 먹였었다. 그뿐만 아니라 반찬이 되었든지 간식이든 매번 앞집 아주머니 댁에 드렸었다. 한참 위인 분께 좋아하실지 그분의 취향도 모르면서 너무나 당당하게 음식을 만들 때마다 거의 갖다 드렸으니 지금 생각하면 쥐구멍을 찾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부족한 솜씨와는 달리 도전정신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근 일주일을 각종 김치를 담고 있는 중이라 누가 보면 반찬가게 운영하는 줄 오해할 정도다. 못하고 잘하고도 중요하지만 정말 열심히 하다 보면 안 되는 건 없는 것 같다. 음식으로는 자립이 의심스러웠던 내가 내 자식은 물론 주변과 나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음식을 만년 의존하고만 살 것 같았는데 세월이 나를 성장시킨다. 자식들이 기댈 수 있는 부모 역할을 당당히 해내고 있다. 우리들의 부모님은 우리들을 부모로 만들어 놓고 어딘가를 향해 가시고 그 자리를 우리는 이어받아서 또 우리 아이들의 부모 역할을 묵묵히 해낸다. 음식으로도 인생무상과 세대교체의 흐름을 목격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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