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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Oct 31. 2023

오십 대 그녀의 마음

오십 대 여자, 나

  오십 대 그 여자는 나다. 그 여자는 얼마 전까지 대학생이 셋인 엄마였다. 다행히 큰아이가 졸업을 하고 여러 면에서 독립을  했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사는 건 아니다. 식구 다섯이 각자 1인 가구를 이루고 산다. 막내가 대학에 입학하자 나를 맞이하는 절차를 밟았다. 막내 수능 시기에 건강검진을 하여 수능이 끝난과 동시에 큰 병을 얻었다. 자식들을 다 키우고 이제 나를 돌보라는 신호 같은 것이었다.


얼떨결에 얻은 병으로 정신이 없었다. 병원의 지시대로 움직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몸은 환자요 마음은 미아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을 견뎌내니 아이들은 각자의 위치를 찾아서 집을 떠났고 남편도 발령을 받아서 집을 떠났다. 아이들의 학업을 위해서 워낙 긴 시간을 초긴장 상태의 마음으로 살아서 인지 막상 막내가 대학엘 입학하자 해방감을 느끼기보다 등대를 찾지 못하는 항해사처럼 많이 힘들었었다.


아이 셋의 엄마, 요즘은 흔치 않다. 흔치 않은데 가끔 어린아이 셋의 엄마를 만나게 되면 그냥 뭐라도 도와주고 싶어 진다. 업무를 하다가도 주민등록상 아이 셋 인 집에는 사심이 발동하여 아주 허용적인 시선을 갖게 된다. 얼마 전 시월 어느 날이 결혼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결혼 30년 동안 난 내 남편의 아내였고 아이들의 엄마였다. 온 마음이 아내였고 엄마였다. 내게 내가 1번이었던 적이 없었다.


막내가 대학에 입학한 후도 한참을 난 앓이를 했다. 갈 곳을 잃은 방랑객 모드로 상당한 방황을 했었다. 젖 먹던 힘까지 온 힘을 다해서 달렸던 내가 마지막 피니쉬라인을 밟고 허탈감에 많이 힘들어했었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한참을 방황했었다. 그즈음 내게 난 스스로를 왜 1번으로 맞이하지 않느냐고 자문하곤 했다. 왜 남편이나 아이들을 위해 온정성 다하듯 내게는 그렇게 못하느냐고 야단치듯이 내게 항의했었다.


30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린 것 같지만 매번 나는 뒤로하고 내 가족을 늘 우선으로 생각하며 생활하던 습관은 짧지 않았었던 거였나 보다.


주말부부로 사는 남편은 주첫날은 집에서 출근을 하는데 옷을 갈아입으려고 잠자는 방으로 옷을 챙겨가지고 들어갔다. 식탁은 두고 거실에 식사를 차리려고 하는 걸 보고 옷을 들고 들어간 것이다. 그런 남편의 뒤통수에 난생처음으로 왜, 먼지 나는데 옷을 거기서 갈아입느냐고 단 한 번이라도 청소를 해봤었느냐고 물었다. 이사하던 날 이사 갈 집을 남편 혼자 방문할 일이 있어서 그곳을 청소했던 적이 있었다. 아주 안 한건 아니다. 30년 동안 딱 한번 했다.


생전 듣지 못했던 잔소리를 듣고 남편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묻지 않았다. 가사는 내 일이라고 생각해서 가족들 누구에게도 대신하라거나 도와달라거나 하지 않고 혼자 전담했었다. 자발적으로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하는 경우는 모르겠지만 내가 청하지는 않았다. 죽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살았다. 남편에게 청소해봤느냐고 내 입으로 묻고 나 스스로 엄청 놀랐다. 아, 그랬었구나! 세상에 진짜 그랬었구나! 청소를.


자식들은 본인들의 할 일을 진짜 열심히 했다. 뿐만 아니라 남편도 마찬가지다. 각자 본인의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았다. 자식들이든 남편이든 거의 모든 시간 동안 각자가 1번이었다. 단지 나는 내가 1번이 아니라 항상 그들을 1번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들을 위해 사는 게 나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30년을. 지난 30년의 나의 삶을 후회한다거나 희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랬다는 것이다. 남편과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한 나를 나는 존중한다. 그 또한 나의 삶이고 나의 선택이었다.


내 작은 바람은 이제는 남편은 남편 대로, 자식은 자식 대로 각자 독립된 인격체로 스스로를 건사하고 살아가길 바란다. 자식은 더 이상 어리지 않다. 남편은 나와 다름없다. 그러니 각자 자립하자는 것이다. 마치 다섯이 1인 가구를 이루고 생활하고 있으니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되었다. 이런 바람은 그들에게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게 하는 중이다. 제발 더 이상 그들을 1번으로 생각하며 살지 말고 나 스스로를 1번으로 생각하고 살자고 내게 간절히 청하는 중이다.


뭐 대단한 걸 하라는 것도 아니다. 먹고 싶은 걸 먹고, 하고 싶은 걸 하고, 사고 싶은 것도 사고 남편이나 자식 핑계김에 덤으로 하지 말고 딱 내가 원해서 나를 위해 하라는 것이다. 지금부터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은 내게 내가 1번인걸 행하면서 살자. 마치 습관처럼 나를 뒤로 미루지말자. 더 이상 방황하지도 말자. 내게 나를 1번으로 생각하며 행동하는 걸 보고 주변이 놀라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생활하자. 어쩌면 지금부터가 진짜 내 인생 2막이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내게 나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자. 제대로 나를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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