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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Feb 22. 2024

기억의 실체

사람, 삶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그냥 혼자 '나'라는 그 자체로 독립하지 못한다. 홀로 쉼 없이 뭐라도 이유를 찾아 그러하므로 나란 사람은 이럴 수밖에 없었다는 자기 합리화에 열을 올린다. 그 많은 이유들 중에 부모나 가정환경 등 성장과정에서의 결핍을 본인의 부족함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이 그 사람이 되기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건 뭘까? 개인적으로는 '부모'라고 생각한다. 부모라고 하면 흔히들 유전인자의 영향일 거라고 생각들 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유전(선천적)과 학습(후천적)의 비율이 45%, 55%라고 생각하곤 했다. 물론 정신이 아닌 신체는 훨씬 더 많은 비율이 유전인자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제부터 생각이 좀 달라졌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떻게 행동하는가는 부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변함이 없지만 부모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여 꼭 선천적인 이유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신체는 선천적인 영향이 크다. 그러나 생각과 행동은 선천적이라기보다 학습된 것이고 태어나서 보고 자란 과정에서의 기억이 그 사람의 구성성분(?)이라는 생각이다.


부모의 행동이 자식이 어떤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가의 중요한 핵심 요소라는 생각이다. 어떤 강사가 말했다. "평온하면 불안하다."라고. 그 강사의 강연을 여러 번 들었는데 그때마다 '저런 말까지 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과 없이 성장기의 가정사를 말하곤 해서 평온하면 불안하다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버렸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말을 하면서 정작 자신은 어딘가에 갇혀있는 사람처럼 힘들어하면서 사는 걸 보면서 각자의 고민상자는 쉽게 풀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 강사의 경우 힘든 성장과정이 현재의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문화유산 정도라고 보인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아트가 그 나라의 국민들을 먹여 살리듯이 본인의 고단한 성장과정이 현재의 생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서 본인이 현재의 본인으로 존재하도록 과거사를 밑천으로 새로운 자신을 태어나게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울한 가정사나 힘든 성장과정이 본인의 전부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힘들 때 핑계도 되어주고 고단함의 원인이라고 합리화도 할 수는 있겠지만 부모든 가정환경이든 그 무엇이든 자신에게 영향을 준 건 사실이지만 그 모든 것이 본인의 족쇄는 아니다. 새로운 나를 위한 문화유산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지 전부일 순 없다는 것이다. 충분히 그 모든 것을 원료로 '새로운 나'라는 가공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자생력이 있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 건 사실이다. 벗어날 수 없어서 한 세월을 보내고도 기억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잊으려고 노력하면 더욱 선명해지는 게 사람의 기억일 것이다. 선천적이 아닌 건 그래도 그중 다행이지 않는가? 굳이 기억의 늪에서 헤맬 이유도 또한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잊히지 않는다면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안고 사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알고 보면 지난날들이 내 기억 속에 못 박혀있듯이 오늘이 또한 미래의 내 기억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비록 어제의 기억은 마음대로 어떻게 못한다면 내 손으로 내 의지로 가능한 오늘을 더 멋진 기억으로 만드는 일을 위해 전력을 다하면 될 일이다.


내 인생은 소중하다. 과거에 덜미를 계속 잡혀있을 이유는 없다. 그 누구도 그러길 원치 않는다. 알고 보면 모든 선택권은 내게 있다. 지나간 시간들을 붙잡지 말자. 기억하고 싶은 기억을 지금부터 만들면 된다. 사람은 선천적인 것 고작 얼마에 내가 만드는 것이 거의 다인게 사람이다. '내가 만드는 것' 그것이 나이고 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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