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지 않다. 그래도 사실이다. 비둘기가 날 쳤다. 사람들 사이를 같이 걷는 겁 없는 비둘기가 흔한 경우라 우연히 부딪쳤겠지 생각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까지는 우연이 겹쳤겠지 했다. 그러나 네 번째부터는 의도된 부딪침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채소에 물도 주고 벌레도 잡고 해야 돼서 텃밭을 간다. 호박줄기에 붙어있는 벌레를 잡느라 허리를 굽히면 엉덩이를 부딪히고 날아가고 고추나무에 물을 주면 어깨를 치고 날아가고 오이나무를 지지대에 묶고 있으면 머리를 치고 달아난다. 연속 삼일을 계속 반복해서 나를 치고 달아나자 겁이 났다.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일을 당하다 보니 당혹스럽기가 말할 수 없었다.
반복해서 겪었음에도 믿기지 않았다. 내가 사람인데 날 뭘로 알고 저러는 걸까 생각하면서 위협적이라 마른 흙덩이를 날아가는 비둘기를 향해서 던져보아도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내게 덤비듯 다가와 부딪히고 달아나곤 했다. 눈을 의심했다. 무슨 독수리도 아니고 다시 봐도 비둘기인데 이래도 되나 싶었다. 혹시 비둘기로 환생한 조상님일까, 아니면 뭘 도와달라는 몸부림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공격적이었다. 새끼를 잃었을까, 짝짓기 철인데 짝을 못 찾아서 몸부림치는 걸까, 별별 상상을 다해 보지만 묘한 경험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텃밭엘 가면 벌떼처럼 모기가 달려들어 온몸을 공격한다. 물파스처럼 생긴 모기약을 바르면서 이겨내고 또 물리고를 반복하면서도 텃밭엘 간다. 채소들의 성장을 도우면서 그들의 성장에 기뻐하며 반복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때 되면 나타나서 무는 모기는 이상하지도 않다. 늘 그래왔으니까. 그러나 비둘기에게는 생전 경험해보지 못했던 터라 '이럴 수 있나, 이래도 되나,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또 있기는 할까, 당한 나도 믿기지 않는데 내가 말한들 우연히 한두 번 부딪쳤겠지 하고 말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뿐이다.
어릴 적 내게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었다. 먹이를 주면 약간의 수줍음을 품고 종종종 쪼아 먹고 멀리 날아가곤 했다. 그러던 비둘기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서있는 사람에게 전신줄에 떼로 앉아있다가 배설물 세례를 퍼붓곤 한다.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 다니는 비둘기를 향해 "훠이~"하고 쫓으면 "저요?"라고 하듯이 올려다보기까지 한다. 맹랑하기가 한계를 초과한 건 일찍이 알고 있었으나 힘껏 날아와 온몸으로 부딪치는 건 이건 도저히 간과하기 힘들다. 멧돼지 참새떼 고라니 까치 등등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피해를 주는 동물들이 많다지만 비둘기까지 사람들을 위협하고 퇴치 대상이라니 당하고도 그건 '반댈세'라는 마음은 또 뭘까?
이제라도 예전처럼 사람 어려운 줄 알고 수줍은 듯 겸손한 듯 그런 비둘기로 돌아가주길 원한다. 퇴비로 사용하기 위해 뿌려둔 깻묵을 떼로 몰려와서 다 먹어치워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뿌려둔 씨앗을 먹어버려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들에게 어울리는 행동을 했을 경우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을지언정 그럴 수 있지를 반복하고 만다. 아니 더 많은 못된 행동을 해도 비둘기로서 어울리는 행동이면 기꺼이 용납한다. 하다 하다 세상에 사람을 치고 달아나는 게 비둘기라니 말이 되질 않다. 반공 포스터에 단골손님인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돼 달라고까지는 바라지 않겠다. 그러나 사람에게 유익한 동물까지는 아니더라도 퇴치 대상에서만은 그 명단을 올리지 말아 달라는 바람이다.
비둘기에게 연일 당하다 보니 좀 과한 생각일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비둘기를 선의로 대했던 사람의 잘못인가, 선의를 악용한 비둘기의 오만인가, 등산로에 비둘기 모이와 물을 놓아두던 등산객은 언젠가부터 그 행동을 그만두었다. 사람을 공격하고 거만을 떠는 비둘기를 일찍 만나버렸을까 싶은 생각도 해봤다. 비둘기나 사람이나 친절한 사람에게 오래 진심을 다해 감사해한다거나 보은 하려 들지 않는다. 그냥 무례하고 오만하다. 본성인지 학습에 의한 건지 모르지만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 친절한 사람에겐 군림하려들고 지배하려는 자에게 굴복하는 묘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분뇨를 분출하거나 사람을 공격하는 비둘기는 엄하게 대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관계설정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 서로 길들여지는 거다. 친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자에게는 친절을 거둘 필요가 있다. 경계를 넘는 자에게는 그 경계를 확인시켜 줄 필요 또한 있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에게는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 계기였다. 능동적으로 본인의 행동을 제어조절하기 어렵다면 훈련에 의해서라도 습득하게 할 필요가 있다. 서로의 행복과 아름다운 관계유지를 위해서는 예의가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비둘기의 오만을 꺾고 초심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더 과한 상황을 면하려면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점검할 필요 또한 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타인을 어려워할 줄 아는 그런 모습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