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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람

관계

by young long Mar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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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 가지 만 가지 이유로 울고 싶었는데 꾹 참고 또 참았는데 이 악물고 참았는데 찰싹 때려주었을까? 놓고 싶었는데 놓고 살았는데 자꾸 놓지 못한 저쪽 때문에 놔지지 않아 묶여 있었는데 끊고 싶었는데 그 무엇인지 모를 것에 의해 이어져 있었는데 이참에 끊을 수 있었을까? 얄궂다. 인생아.


  오랜만에 만난 사랑하는 혈육이 자신의 배우자를 가시는 크고 꽃은 작은 외래종 꽃이라고 했다. '오호, 요 녀석 봐라, 벌써 짬이 그렇게 되었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십 년, 그의 배우자는 여전히 동안, 그런 동안이 아니었다. 그냥 앳되었다. 그런 배우자에게 외래종 꽃이라 지칭하는 그가 안정감 있어 보였다. 한없이 여유 있어 보였다.


 무슨 말을 해도 흔들리지 않을 사람. 그런 사람은 없다. 흔들리면서 뽑히지 않고 살려고 스님이 법문 외우듯 스스로를 타이르며 버티고 버티는 게 인생이다. 그 방법,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고 애쓰는 방법 중 하나가 상대가 듣지 못할 거라는 전재로 토해낸다. 외래종 꽃이라고. 어쩌면 새롭게 상대를 맞이하기 위해 상대에게 느낀 서운함을 그렇게 토해내고 또 토해내는 자정작용의 하나일 거다.


 같은 잘못을 했다. 아니 더 큰 잘못을 했어도 내 사람이어야만 하는 사람에겐 그 상대가 굳이 원하거나 그러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용서라는 이름으로 눈감아준다. 가끔 그렇게 비겁한 게 인생이다. 다소 거칠어도 그 속에 애정이 있는데 진즉부터 보기 싫었었기에 애정이고 뭣이고 외면해 버린다. 그 세월이고 뭣이고 난 모른다, 몰라. 손사래를 쳐버린다. 사람이 그렇게 얇다. 신이 아니고 사람이라고 그 판단을 합리화해버린다.


 우리 엄마, 고생 많이 하셨다. 마음고생 몸고생 말로 다 형언하기 힘들다. 인생이 마라톤이라고 했던가? 올림픽에서 '고생'이라는 종목이 있었다면 단연 금메달리스트가 우리 엄마다. 그런 엄마에게 신은 뭘 더 줄게 남았다고 뇌경색에 우측 편마비라는 말씀도 못하시고 목 넘김도 못한 상태로 3년을 넘게 고통을 줬다. 이게 인생인가? 가혹하다.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삶의 공간과 나와의 관계. 그 게 운명이란 것인가?


 운명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면 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끊자!', '뭘 끊냐?', '뭘 끊고 말고 네 맘대로 하냐?', 기대가 있어 야속하고 애정이 있어 기대하는데 뭘 그 정도 가지고 끊고 말고 하느냐? 다 쓰지 않아도 다 말하지 않아도 함께한 시간이 내 속에 살아 숨 쉬는데  마음대로 끊고 말고 하느냐? 관공서에 배우자나 형제자매라고 글씨로 박혀있어야 끊을 수 없는 관계인 건가? 허망타.


 뭘 원하든 원하는 대로 훨훨.


 이해를 하면서도 서운할 때 서운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가슴에 깊이 맺혔더라면 쉽게 말도 못 했을 것이다. 그러나 깊이 애정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하였노라고 말할 수 있다. 내 혈육이 그 배우자에게 '외래종 꽃'이라고 했다고 그 배우자가 진짜 외래종 꽃이겠나? 그 정도의 신뢰를 전재하기에 할 수 있는 말 아니겠는가?


 박완서 님의 글을 읽고 늘 걱정했었다. 자식얘기, 형제자매, 부모, 친구 얘기 그렇게 다 해도 되나? 걱정했었다. 가끔 그 지인들도 힘들었을 거란 걸 글쓴이도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독자인 내가 걱정했으니까. 삶은 대동소이하다고 언젠가 말했었다. 그리고 교육학 박사가 세계적인 논문 발표 내용을 말하는 것보다 그 집 수험생 아들얘기가 남는다고.


 내가 뭐라고 박완서도 아니면서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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