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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Sep 07. 2021

그래도 살아진다.

못하는 사람

  반평생을 살아내면서 변화의 속도를 체감하면서 산다. '라떼(나 때)는' 등의 용어들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만 봐도 많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여러 가지 변화된 현상 중에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 있다. 가사를 어느 일방의 일이 아니라 공동의 책임으로 인식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오십 대 정도까지는 전업주부 비율이 높았다. 사십 대는 맞벌이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 같다. 삼십 대는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취업, 미취업자가 구분되지, 남녀가 모두 거의 같은 비율로 취업을 한다고 본다. 그러한 변화 때문에 가사를 공동의 책임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변화의 과정 중에 인식의 변화가 뒤따르지 않아서 가사 특히 육아는 여성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슈퍼우먼을 강요받고 살았던 맞벌이 여성들이 많았다. 지금도 그런 경우가 적지 않지만 지금의 사십 대 여성들이 극한의 힘든 시간을 겪어냈을 것이다. 분명히 한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일의 한계치를 넘겨가면서도 그녀들의 어머니 세대들이 살아낸 것처럼 살지 않기 위해 다른 말로 경단녀가 되지 않기 위해 그 끈을 놓을 수 없어서 그 짐을 짊어지고 몸부림치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니'를 마른침 삼키듯 삼키면서 살아냈다.


  오십 대인 내 친구는 십여 년을 전업주부로 살다가 큰아이가 중학교 입학하자 취업을 했다. "네 눈이 보배다, 참 따뜻한 성품의 남편을 만났구나." 그랬더니 "대체로 그런 편이 긴 하지, 그런데 본인은 일찍 퇴근하고 내가 두세 시간 더 늦게 퇴근해도 그 늦은 시간에 식사 준비를 해서 내가 차려줘야 밥을 먹는다." 그러면서 아마도 시작부터 맞벌이가 아니라 전업주부를 하다가 취업을 해서 더 그런 것 같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 세대는 남성이 더 연상이다. 조금이라도 더 살았으니까 더 생각이 깊을 테고 생활에서 합리적인 방향을 쉽게 찾을 법도 한데 참 애석한 일이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육아휴직도 남편이 하고, 다양하게 사회적인 뒷받침이 되어가니까 가능한 일이다. 특히 부엌을 금남의 장소로 생각하던 옛날과는 하늘과 땅처럼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여러 가지 영향이 있겠지만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젊은 남성들이 척척 요리를 해 먹는 모습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그리고 다양한 요리법, 레시피 등을 제공하는 다양한 매체들의 영향도 한몫을 단단히 하는 것 같다.


  불현듯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집들이를 했던 때가 생각난다. 우리 엄마를 비롯해서 가족들은 내가 결혼을 하면 "밥이나 제대로 해 먹을 수 있을까?" 하면서 걱정이 태산이셨다. 그래서 더 긴장을 하고 요리책을 사서 남편이랑 머리를 맞대고 한 가지 한 가지 반찬을 준비했던 생각이 난다. 그런 내가 잘하지는 않지만 실험정신은 남달랐던지 아이들을 키우면서 삼시 세 끼는 물론 간식까지 내손으로 거의 모든 것을 만들어서 키웠다. 주로 만들었던 간식으로 피자, 치킨, 만두, 도넛, 고구마튀김 등이었다. 그 메뉴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만들어서 먹었다. 아이들이랑 밀가루 반죽을 같이하면서 재미나게 그야말로 지지고 볶으면서 살았다.


  지나고 보니 참 어떻게든 살긴 살아지는 것 같다. 좀 아쉬운 건 좀 더 배워서 제대로 잘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무한데 용기만 있는 엄마였던 것 같다. 그래도 별 탈 없이 잘 먹어 준 우리 가족들이 고맙다. 엄마가 부족하니까 아이들에게 제재를 덜 해서 함께 음식을 만들고 완성되면 그 기쁨이 더 컸었다. 그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간직되었으면 좋겠다.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못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뭐든 열심히 함께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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