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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Oct 11. 2021

영원한 사랑

자식

사랑이 샘물처럼 계속 샘솟는다는 걸 체험하게 해 주는 존재는 자식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자식을 낳았다는 건 내 마음속에 사랑을 생산하는 공장을 차린 것과 같은 일이다.

자식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마음껏 원 없이 사랑해도 된다.

성장하는 단계 단계마다 바른 성장을 위해 샘솟는 사랑을 억누르면서 훈육해야 될 때도 있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르지만 막내를 처음으로 벌을 준 적이 있다.

두 손을 들게 했다. 두 손을 들자마자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서 와락 안아버릴 뻔했다.

잘못한 걸 인식하고 반성하게 하기 위해 한 행동이 나를 마비시킬 정도로 사랑스러울 줄은 몰랐다.

사랑스러워도 시도 때도 없이 자유롭게 다 표현할 수 없다.

사랑할 자유는 있어도 표현의 자유는 제한되었다.


육아의 한가운데에 있는 경우 엄마는 극한 직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내 목숨을 담보로 자식을 낳고 밤낮으로 모든 것을 다 바쳐 육아를 할 땐 잘 길러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내속에서 샘솟는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가슴속 깊이에서 샘솟는 사랑을 머릿속에서 생산되는 이성적인 호르몬에 의해서 억눌림을 당한 것이다.

특히 훌륭한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는 또 다른 색깔의 사랑으로 무장되어야 한다.

잘 길러야 한다는 책임감 앞에 당면해 있으면 속으로만 '엄마는 진정 너희들을 사랑한다.'이렇게 표현을 억누르면서 지낼 때도 있다.

뱃속에서 눈 코 입 팔다리 머리 몸통이 만들어지도록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듯이 좋은 인성의 건강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엄마는 온 정성을 다해야 한다.

온 정성을 다하는 게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이다.


육아의 치열함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고 보니 지난 시간들이 하나하나 미화되기 시작한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육아가 끝이 있긴 있다.

"그때가 좋았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이런 말을 한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인지 전쟁인지 구분하기 힘든 터널도 끝이 있었던 것이다.

아직은 온전 이 해방감을 누리고 싶다.

아이 한 명 한 명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이제라도 순수하게 온전히 사랑한다는 걸 표현하고 싶다.

그들을 사랑한다는 그 감정을 마음으로든 머리로든 자유롭게 누리고 싶다.

훈육해야 하는 책임에서 자유롭고 싶다.

그냥 사랑하고 싶다.


사랑한다. 내 아이들아!

살아서도 죽어서도 너희들을 사랑할 것이다.

고맙다. 잘 자라줘서.

언제 어디서든지 너희들의 든든한 언덕이 되어줄 것이니 마음껏 기대라.

고맙다. 우리 아이들로 태어나줘서.

엄마는 행복하다.

영원히 사랑둥이, 행복 둥이, 귀염둥이를 사랑할 것이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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