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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Nov 17. 2021

진심은 언젠가는 통한다.

성향

  나는 곰에 끌린다. 타고나기를 곰 과로 타고났으니 곰에 끌릴 수밖에 없겠지. 곰에 끌리고 마는 게 아니라 여우과를 싫어한다. 여우과는 지혜롭게 보이고 민첩하다. 내 개인적인 편견이겠지만 지혜롭게 보일뿐 지혜로운 이는 드물다. 날렵한 여우과의 분들이 곰과를 보면 답답하고 숨 막혀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러든지 말든지 갈길을 가는 게 주특기인 곰이 그런 걸 아랑곳 할리가 없다.  주책없이 그런 내가 나는 좋다. 여우과를 가까이서 보면 혀를 차고 고개를 저을 일이 많은데 내가 여우과였다면 정말 스스로가 싫었을 것 같다. 어떤 경우이든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그게 문제고 보기 안타깝지 그 외에는 서로 엉키고 기대며 사는 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일 것이다.


  시절이 지금과는 사뭇 다른 밀레니엄 시대 이전의 직장생활을 그려보면 인간적이면서 서글픈 일들이 많았다. 상하관계가 유난했기에 그 횡포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한창 커가는 자식을 가르치고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해야하기 때문에 그 횡포를 온몸으로 견뎌냈던 게 다반사였다. 그런 직장문화 속에서 같은 직원들끼리는 동료애가 남달랐다. 형제 그 이상일 경우가 아니었을까 생각되었다. 가장도 아니고 집안의 무거운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난 곰탱이과인지라 폭풍우가 쏟아지면 온몸으로 그 비바람을 다 맞는 스타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무던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 시절은 노사분규가 엄청났던 시절이었다. 우리 직장도 노사분규가 크게 일어났었다. 노측의 고발로 검찰에 조사를 받고 아홉 시 뉴스에도 나오고 참 엄혹한 시대를 살아냈다. 그런 와중에 임원진들이나 주요 직책을 맡은 사람들은 검찰에 조사를 받곤 하였는데 직장 내의 업무의 특성상 사측의 조사대상 중에 나도 조사를 받았었다. 알고 모르고의 문제보다 직장에 해가 되지 않는 답변을 하고 나왔는데 직장 상사는 그것을 보이는 껍데기로만 판단하여 요란스럽기 그지없는 언사를 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요란스럽고 경박한 행동을 묵묵히 견디면서 지냈었다. 나는 그 당시 누구보다 직장에 대한 주인의식이 남달랐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정직을 바탕으로 직장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응했기에 나는 나 스스로 만족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모든 게 안정을 찾고 정상화가 되었다. 평화롭게 생활을 하다가 어느 틈엔가 그 경솔한 그분이 내게 은근한 호의를 표하기 시작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별 움직임 없이 묵묵히 내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그분은 혈액형의 영향인지 말로는 당해낼 자가 없을 정도로 상대의 온 삶을 송두리째 뽑아냈다가 흔들었다가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분도 사람인지라 내 눈에는 인간적인 정이 느껴졌던 분이었다. 내가 퇴직할 즈음엔 내게 사비로 백화점에서 옷도 한벌 사주고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하려고 했었다. 나는 완강하게 거부했었다. 그래서 대신에 변치 않는다고 하면서 금팔찌를 선물해줬다. 뿐만 아니라 옮기기에 낯 뜨거운 칭찬을 한보따리 해주셨다. 워낙 칭찬을 먹고사는 주책없는 나는 그걸로 가슴 뜨끈함을 느끼면서 그분을 추억하기도 하면서 산다.


  여우를 닮았던지 곰을 닮았던지 그냥 닮았지 본질은 인간이다. 성향의 문제로 더 선호하는 형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갖은 편견으로 누군가를 내 의견에 동조하게 만들려고 애쓴다. 화에도 사람이 되는 건 곰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으면 조금은 우직하게 견디면서 곰처럼 살자고 설득하려 든다. 단시간에 경솔함으로 속단하는 경우는 사람의 됨됨이를 얼른 못 알아보더라도 끝내는 듬직한 성품에 진심이 있음을 알게 된다. 하루를 살더라도 둥글둥글하고 믿음직한 곰처럼 살기를 권한다. 어딘가에서 혀를 끌끌 차는 여우과를 선호하는 분들의 못마땅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쩌면 곰도 여우도 적절히 닮은 지혜로운 사람이 가장 이상적인 사람일 것도 같다. 모두가 원하는 이상적인 사람은 아니더라도 내 주위에는 사람이니까 사람의 진심을 알아봐 주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직장이든 그 어느 곳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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