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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Dec 07. 2021

그냥 그리고 무조건

사랑, 삶

  출근하여 컴퓨터를 켜보니 어느 시인의 시가 메시지로 도착해 있었다.

그 시인은 사랑이란? '빈자리로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사춘기 소녀처럼 '오천만이 기다리기만 하면 사랑이 이루어지는 건 힘들겠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빙그레 웃는다. 그 시인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주고받는 거라고 했으니 각자가 걸어온 길에서 깨달은 생각이 다르기 때문일 거다.

살아간다는 건 참 두려운 거다.

날마다 평범하게 어떻게 보면 그날이 그날 같게 살아가는 건 따분한 것 같지만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뜻밖의 일 앞에 어떻게 할 수 없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것 또한 말할 수 없이 속상한 일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묻고 답할 여력이 없는데 먹고 자고 하는 것처럼 속절없이 이런저런 생각은 또 시도 때도 가리지 않는다.


  사람이기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거다.

그 이런저런 생각 속에 '왜, 그냥 사랑할 수는 없을까?'라는 말풍선이 일렁거린다.

'이 세상을 살면서 정말 순도 100%의 사랑은 존재하는 걸까?'

이 나이가 돼서도 낌표보다 물음표가 많은 걸 보면 아직도 덜 익은 사람인가 보다.

그냥, 무조건 사랑할 수 있는 건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정말 행복한 일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녀 간의 사랑은 설렘도 있고 유효기간도 있고 알고 보면 재미난 게 많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감정이 샘솟는 시기가 그 남녀 간의 사랑이 진행형일 때가 아닐까 싶다.


  고약스럽게도 씁쓸한 사랑, 그게 정녕 사랑인가? 하는 그런 사랑에 대해 생각해볼까 한다.

자식을 낳아서 기르면 유효기간이 없는 무한한 사랑이 그 자식을 향해 샘솟는다.

어쩌면 그런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게 결혼하여 얻은 가장 값진 선물이 아닌가 싶다.

봐도 봐도 사랑스럽고 줘도 줘도 아깝지 않은 대상이 자식이다.

사람은 사랑하여야 그 존재가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그 사랑을 영원히 할 수 있게 해 준 자식들은 내가 존재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냥, 무조건 사랑한다.

그렇게 무조건 사랑하는 대상이 우리 엄마에게 우리들 일거다.

그런데 그런 우리들은 과연 우리 엄마를 무조건 사랑하는 걸까?

자식이 여럿 있으면 그 성격이 '한 뱃속에서 나온 게 맞나?' 할 정도로 다르다.

각각 그 역할이 있어서 서로 보완도 되고 나쁘지 않다.

노력과 정성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본인의  입으로 그 노력과 정성을 말하지 않으면 참 아름다우련만 참지 못하고 그걸 열거하곤 한다.

거기서부터 소음이 인다.

고마움 미안함 그런 감정이 싹트면서 각자 '무언가 더 역할이 없을까?' 하면서 하고자 하는 마음과 또 더 고마운 형제에게 언젠가는 그 고마움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그러기 전에 본인 입을 통해서 스스로의 노력을 발설하게 되면서 그간의 그 고마운 행동이 오염되기 시작한다. 본인의 그 예쁜 마음과 행동을 주변인이 느끼고 보은 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자식이기에 그냥 부모님에게 마음을 다해 드렸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 누구의 시선과 그 누구의 보상이 꼭 필요한 걸까?

부모와 자식인데?'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다.

어찌하여 내리사랑과 위로 사랑이 그 깊이와 무게가 다르게 만들어졌을까?

애석한 일이다.

까마귀 고기를 삶아먹었을까?

본인이 자식들에게 갖은 마음을 부모에게 가지면 해결될 일을 그게 그렇게 되지 않는 이유가 뭘까?

본인의 진정 어린 사랑과 정성이 본인 입으로 발설하면 휘발해 버린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냥 사랑했으면 좋겠다.

누가 뭐래도 사랑은 '그냥 그리고 무조건'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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