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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Dec 11. 2021

알 수 없는 그 마음

우정, 친구

  고향 동네에 아주 오래된 팽나무가 있다.

너무 오래되어 나무속이 텅 비었다.

노령의 팽나무는 어려서 숨바꼭질하면 숨을 수 있을 정도로 속이 텅 비었지만 철이 되면 잎이 돋는다.

가을이 되면 노릇하게 단풍이 든다.

이맘때면 죽었는지 살았는지 의심을 받을 만큼 나목 그 자체다.


  그 어릴 적 함께 숨바꼭질했던 내 오 십년지기 친구에 대한 알 수 없는 나만의 혼돈의 시간을 달래 보려 한다.

지금으로부터 육 개월 전의 일이다.

다른 친구 한 명을 포함해서 모임을 하는 친구 셋의 톡방이 있다.

나 혼자 설레어 기쁜 마음에 들떠서 '브런치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가 새겨진 소식을 톡방에 올리면서 내 글을 구독해주길 청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까지 무응답이다.

소소하게 안부를 나누던 그 톡방은 어쩌다 보니 침묵의 방이 되어버렸다.

오십 년 전이었으면 좋았을 법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때였더라면 톡방이고 뭐고 없었기에 그런 경솔한 구독 요청 같은 행동도 안 했을 것이다.

어쩌다 때아닌 몰랐으면 좋았을 일이 일어나 버린 것이다.

뭘까?

무슨 마음일까?

그게 뭐라고 침묵을 이렇게 오래씩이나 해야 할 일일까?


  나는 한동안 요즘 말로 멘붕상태였었다.

그즈음 날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내 기쁨에 진심으로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 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글을 썼었다. 지금도 변함없는 마음이다.

여러 가지 말 지 않은 추측을 해보지만 알 수 없는 그 마음은 여전히 알 수 없다.

나목이 된 팽나무를 죽었을 수 있다고 오해하듯이 내 친구의 마음을 오해하지나 않고 있는지?


  내가 생각하는 내 친구는 오래된 구들 짝 같다는 생각을 했다.

늘 그 자리에 있고, 오래도록 따뜻한 그런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 친 형제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같이 했다.

사람들은 우리 둘을 많이 닮았다고 했다.

외모는 많이 다른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늘 함께 다녔기 때문일 거다.

이심전심, 별로 말이 필요 없는 그런 사이였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했는데 단 한 번을 다퉜던 기억이 없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났던 것 같고 변함없는 그런 편안한 친구다.


  어제 TV 드라마에 나오는 친구 셋의 우정을 보고 많이 부러웠다.

내게도 저런 친구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앞다퉈 친구를 위하는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는지 알고 살았다.

오 십년지기 그 친구를 그렇게 생각했다.

뜻하지 않게 그 친구의 본마음을 알게 된 건지?

별일 아닌데 나 혼자 오해하고 있는지?

전화할 수도 톡방의 침묵을 깰 수도 있지만 혹시 더 큰 상처가 기다리고 있을까 봐 걱정하면서 그 침묵에 적응 중이다.



  나는 본시 곰과라 누군가와 쉽게 이별을 한다거나 마음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형이 아니다.

삼십 년 전에 입었던 옷들과도 이별을 못하고, 하다못해 아침에 먹고 남은 찌개 와도 이별을 쉽게 못한다.

검소해서라기 보다는 원래 그렇게 생겨먹어서 남은 찌개도 또 먹지 않을 것이 뻔한데 몇 번 더 데우다가 데우기를 그만두면 자연스럽게 버릴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될 때가 되어야 버린다.

속절없는 이 마음이 구차하다.

질투라는 단어를 내밀 정도로 무슨 대단한 성취를 하였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고 시간이 흐르는 게 세상 씁쓸하다.

이 모든 게 우정이라는 보석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는 나의 욕심일까?

"놓아라, 버려라. 부질없다."

나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지만 현재에도 미래에도 본성을 이기지 못한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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