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보다

11. 평범, 그 소중한

by 바보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 어머니들은 종일 집안일에 매달렸다. 아궁이 앞에서 밥을 짓고 우물가에 모여서 빨래를 하고 뙤약볕 아래서 김을 맸다. 한 푼을 아끼느라 아등바등 살아가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어린 내 눈에는 옹색하고 구차스럽게 느껴졌다. 동네 엄마들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물론 우리 엄마도 내가 살고 싶지 않은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나의 삶은 아름답고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화책 속에는 특별한 것들이 무궁하게 있었다. 나는 동네 아이들과 노는 것보다는 혼자 책을 읽는 걸 좋아했다. 점점 이웃들과 멀어지면서 일상적인 것들을 은근히 경멸하기 시작했다. 중학생이 되어서 학교에서 추천하는 ‘감자’ ‘운수 좋은 날’ 같은 우리나라 근대 소설을 읽었을 때 소설 속 가난하고 너저분한 현실에 진저리를 쳤다. 어두운 일제강점기를 견디듯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야말로 내가 철저하게 외면하고 싶은 삶의 단편이었다.


한국 현대 소설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는 음식 이름이 나오고 내 주변에 있을 법한 등장인물들이 질척대듯 늘어놓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은 짜증 나는 일이었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읽었던 것 말고는 우리나라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책 읽기를 좋아했으므로 나는 무수히 많은 외국 소설들을 읽어댔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기에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하는 게 어려웠다. 여느 산업처럼 출판업계 역시 빈약했던 시절이라 출판되는 책은 거의 동화책이나 소설책이었다. 그래서 독서가 동화나 소설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외국 소설을 통해서 내가 닿을 수 없는 경이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게 기뻤다. 국내 소설에는 내가 눈을 감고 싶은, 지루하고 뻔한 일상이 들어있지만 외국 소설에는 이국적인 풍경과 생의 의미와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것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감동을 받은 소설이 있었다. 이미륵의 자전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읽고 오랫동안 그 소설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중학생이던 나는 학교 도서실에서 그 책을 빌려서 읽었는데 반납을 하고 나서도 도서실에 갈 때면 서가에 꽂혀 있는 그 책을 떨리는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도서실 어둑한 서가 위에 세워져 있던 낡고, 작고, 슬픈 그 책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또 한 권의 책이 성장기의 나를 뒤흔들었다. ‘압록강은 흐른다’를 번역한 전혜린의 에세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그것이었다. 그 책에는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매혹적인 구절들과 단어들이 산재해 있었다. 절대로 평범해져는 안 된다, 천재에의 꿈, 광적인 지식욕, 물질의 결핍과 수면 부족에도 촌음을 아끼며 인식에 바쳐지는, 외계와 속물과 타협하려 들지 않는, 반항적이며 정신의 자유를 지키려는, 환상, 몽환…. 그가 책에서 그려낸 뮌헨의 안개와 가스등을 그리워하면서 그의 우울과 고독을 흉내 내기도 했다.


우리 부모님도 딸들이 책을 읽고 공부만 하도록 지지해 주었다. 그러나 내가 추구했던 물질에 대한 경시와 지식이나 관념에 대한 숭배는 오히려 나를 세상에 무지하고 편협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웃과 어울려 생활하는 법을 알지 못했으므로 현실과의 괴리감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 좌충우돌하면서 힘들게 사회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정신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종일 채소를 다듬어 파는 아주머니들, 길가에 고추를 말리는 할머니들을 보면 그들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세상살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게 되었고 어느덧 각자 다른 환경에 놓인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차별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릴 때 생각했던 특별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 그토록 부정했던 어른들의 억척스러운 삶의 모습도 달리 보였다. 일제와 전쟁과 가난의 시련을 버텨낸 어른들이었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수고로움이 얼마나 진실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평범한 일상을 착실하게 이어가는 게 행복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 나이를 먹은 보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