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보다

12.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바보

나이가 드니까 인생은 고해, 괴로움의 바다,라는 말을 깊이 인정하게 된다. 괴로움의 보편성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고통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괴로움의 이유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엄청난 난이도와 강도를 지닌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류의 수많은 스승들이 인간은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는 가르침으로 고통의 이유를 설명하면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고통을 피하고 싶은 게 모든 생명체의 본능일 것이다. 그래서 행복이란 쾌락이나 기쁨이 아니라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내 나이쯤 되면 정말로 기쁨이나 즐거움 같은 걸 별로 바라지 않게 된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세상은 이중적이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일원적인 것도 아니고 이원적이지도 않다. 이중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좋은 게 항상 좋은 것도 아니다. 그 좋은 것에 싫은 것이 동전의 양면처럼, 자석의 양극처럼, 꼬인 새끼줄처럼 함께한다. 그래서 좋은 일이 있으면 그것이 데리고 올 싫은 일을 미리 체크해 보고 감수할 마음을 갖게 된다. 나쁜 일은 당연히 피해야 한다. 우리를 파멸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기꺼이 감내하면서 그것이 가져다줄 좋은 무엇인가를 기다려본다.

국가도 두 얼굴, 이중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국가라기보다 정부라고 하는 표현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국민을 괴롭히기도 한다. 교묘하게 국민을 속이고 국민의 수고를 갈취한다. 세계 뉴스를 통해서도 국민 위에 군림하는 위정자들을 보게 된다. 조선말 왕족과 양반 세도가들이 단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얼마나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알고 있다. 남한에 사는 우리는 현재 북한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남한의 정부 역시 진실하고 선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정치가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언론인들의 기사를 믿지 않는다. 아름답게 포장한 기득권 세력들의 교묘하고 은밀하며 파렴치한 뒷면을 볼 줄 아는 국민이 많아야 그 나라가 오래 건강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인간이 벌인 잔혹한 흑역사를 별로 가르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검은 세력들의 움직임에 대해 무지하다. 무엇인가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어지럽고 지저분하고 사람살이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감사한 마음을 지니라고 한다. 세상의 문제는 긍정을 바탕으로 해야 개선되기 때문이다. 비판만 있으면 파괴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이것이 긍정 위에서 비판 의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건져 주고,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는 만병통치약 같은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단연 ‘감사하는 마음’을 들 것이다. 젊은 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반발했다. 이렇게 부조리한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거야? 그러나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제는 감사하는 마음만큼 각종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고 성장시키는 게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지난 시간 나를 몹시 괴롭혔던 이들에게까지 감사합니다, 하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게 되니까 내가 편안해지고 행복해진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목표는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고된 훈련장 같은 지구 학교에서 억지로라도 감사합니다, 하고 자꾸 외치면 세상이 그 아름다움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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