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보다

14. 상장은 어디로 갈까?

by 바보

학교에서 상을 타면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소중하고 뛰어난 사람이 된 것처럼 기뻐했다. 어른이 되어 직장에서 표창장을 받았을 때도 우쭐했다. 내가 잘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두 번째 받을 때는 그 표창장이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누구나 받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부끄러웠고, 더 나이가 들어 상을 준다고 했을 때는 적극 사양했다. 그 상을 승진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동료들에게 양보하려고 했다. 그런데 수상자를 바꾸려면 다시 부장 회의를 소집하여야 한다고 해서 그냥 받았는데 매우 쑥스럽고 민망했다. 지금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받으면 되는 건데 상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직장에서 물러날 때는 그동안 월급을 받고 잘 살았는데 훈장까지 준다고 해서 퍽 어색했다.

상을 받으면 뛸 듯 기뻐하는 중에 마음속에서 의문이 일어났다. 이 상장은 나중에 어떻게 되는 걸까? 질문은 반복이 되었고, 상장의 끝은? 하늘에 기록이 되는 것도 아니고, 땅 위에 새겨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슬퍼졌다. 상장을 받는 순간의 즐거움과 영광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실망의 감정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더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운동장 조회를 설 때 구령대 위로 올라가서 상을 탈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교장 선생님에게 경례를 하고 구령대를 내려설 때면 이 찬란한 순간은 어디로 가버리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언니처럼 따르던 소꿉친구가 있었다. 맏이였던 나와 달리 언니와 오빠들이 많았던 친구는 모르는 게 없는 야무지고 영리한 아이였다. 고무줄놀이, 팔방치기, 어른들의 심부름, 무엇이든 잘했다. 나는 밤낮으로 그 친구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런데 학교에 입학을 한 뒤 친구는 힘을 잃었다. 공부를 못하는 어린이로 판정이 난 것이었다. 받아쓰기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다고 했다.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같은 반이 되었는데 친구는 책을 읽을 때 몹시 더듬거렸다. 학급 아이들이 낄낄대며 그 친구를 놀렸다. 친구와 다니면 나까지 놀림을 받을 것 같았다. 나는 친구를 외면했다. 3학년이 되었을 때 친구는 고개 너머로 이사를 갔는데 그렇다고 전학을 간 것은 아니었다. 그 후로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렇게 똑똑했던 친구가 학교에서는 성적 부진아가 되었다는 게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친구는 어른이 되어서는 틀림없이 자기 재능을 발휘하면서 살림 잘하고 다정한 엄마로, 할머니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학교 교육이 교육의 전부는 아니지만 학교 성적으로 앞날의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 공부를 잘하면 좋은 직업을 얻고 인정을 받으며 살아갈 확률이 높아진다. 사람의 능력은 다양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지나치게 학과 점수 위주로 아이들을 평가하고 있다. 학벌을 마치 현대판 신분제인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교생 실습을 갔을 때 중학생인데도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외모에서는 남다른 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착하고 성실해 보였다. 내가 그 아이를 특별 지도하게 되었는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아이는 구구단을 끝까지 암기하지 못했다. 아이는 멋쩍게 웃기만 했다. 그때는 그 아이가 노력이 부족해서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야 그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체육에서 그 아이와 비슷한 무력감을 자주 느꼈다. 운동회 때 나는 아무리 힘껏 달려도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달리기를 중간 정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잘 달리는 축에 속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내가 받았던 그 상장들이 어디로 가는지 확실하게 아는 나이가 되었다. 언젠가 불태워질 것이고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아무리 거대한 상장과 크나큰 명성도 지구 사용 시간이 끝나는 날, 감쪽같이 자취를 감출 것이다. 일류 학벌을 가진 사람들도,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도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 역시 나이 덕분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학벌과 재산이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음공부를 하러 갔을 때였다. “이곳에 들어오면 일단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 하면서 학교나, 직위, 재산 같은 것을 내세우면 안 됩니다. 우리는 각자가 존귀하고 온전한 존재라는 자각을 갖고 사람을 평등하게 보아야 합니다." 안내자의 말에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돌이켜 보면 시험 점수로 사람을 평가하는 시대적 환경에서 나는 비교적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만약 다른 문화권에서 살았더라면 열등한 사람으로 살았을지 모른다. 사람의 재능은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점점 실감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을 했다니까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학교 교육에도 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더 세월이 흐르면 과거의 육두품이나 반상제 따위의 신분제처럼 학교 시험 성적과 학벌로 사람을 줄 세우고 등급을 매기고 있는 문화가 야만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학업 성적이 좋았든 나빴든, 누구나 자신을 존중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본다. 나이가 가르쳐 주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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