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한 명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어디서나 나에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딸만 있는 우리 집에 와서 맨날 아들 자랑하는 아버지 친구 아저씨를 미워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초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을 굉장히 싫어했다. 선생님은 아주 냉정하고 사무적인 남자 어른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아직 어려서 선생님 흉을 볼 줄 몰랐지만 중학생이 되어서는 달랐다. 중학교 2학년 담임도 초등학교 3학년 선생님과 비슷했다. 아이들과 전혀 감정 교류를 하지 않고 멀리서 차갑게 아이들을 노려보았다. 어떤 선생님은 지나치게 좋아하기도 했지만 선생님들 흉을 보면서 중 고등학교 시절을 지냈다. 대학 교수들 중에도 괴상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까탈스러운 어린이였고 학생이었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첫 직장에서 사람들과 좌충우돌하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때였다. 윌리엄 사로얀의 ‘인간희극’을 읽게 되었다. 그 책에서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는 등장인물을 만났다. 그는 사람을 가까이하기 싫고, 사람에게 지치고 신물이 나고, 사람들이 역겹다고 말했다. 인간은 부패했고, 인간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했다. 썩어빠지지 않은 인간, 믿을 만한 사람을 한 명이라도 찾아낼 수 있다면 자살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날 정도로, 소설 속 그 인물의 말과 생각에 공감했다. 나중에 우연히 그 소설을 다시 읽게 되었을 때, 이게 나를 그토록 감격시켰던 그 책이 맞는 거야? 하면서 충격을 받기는 했다. 같은 책이었는데도 완전히 다른 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전에는 그 인물의 이야기가 그 소설에서 상당한 비중과 분량을 갖고 크게 확대되어 읽혔다. 그런데 다시 그 책을 만났을 때는 내가 감동을 받은 부분이 그 소설에서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한 아주 짤막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어지럽던 시기에, 놀랍도록 나와 생각이 같았던 소설 속 등장인물처럼 나 역시 인간다운 사람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주변에는 없지만 어딘가에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을 것으로 믿었다. 세상은 안갯속에 있었고, 사람들의 모습도 미궁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바람이 간절해서 그랬는지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은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사람을 판별하는 기준이 단순하고 명확했다. 당시 대단한 지식인으로 꼽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을 실제로 보고 싶었다. 직장에서 몰래 빠져나와 그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강연을 들으며 그가 가진 해박한 지식과 언어 구사력에 감탄했다. 과연 그는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람이 실망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추하게 망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입증할 만한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훌륭한 지도자로 추앙을 받았던 또 다른 어떤 어른도 그를 따랐던 사람들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도록 만들었다. 늙어서 망령이 났다고 사람들이 수군덕거렸다. 훌륭한 사람으로 추앙을 받았던 사람들이 부정적인 모습으로 변화하는 걸 지켜보면서 혼란스러웠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었지만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멀리 있는 배신자였다. 그들의 추락에 당황스럽기는 했어도 내가 직접적으로 상처를 입거나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의 변신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젊은 날에는 싫은 사람도 많았지만 상대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의 농도가 진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대단히 좋아했기 때문에 그 크기만큼 상처를 받았다.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하면서 괴로워하다가, 그가 진짜 내가 생각했던 그런 사람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고, 나중에야 내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은 내게 비친 이미지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그 사람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같은 사람을 보아도 상황마다 각기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사람도 늘 변하는 것이고 동시에 그 사람을 보고 있는 나 역시 변하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들에게 너그러워졌다.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나이만큼 넓어지기도 했겠지만 나를 포함해서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현실적으로 변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사람은 끝없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온갖 욕망에 집착을 하고, 자기를 앞세우고 자기에 갇혀 산다. 그게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나는 남들에게 사람 이상이기를, 훌륭하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위대한 성인에게나 가능할 인간성을 남들에게 요구했던 것 같다. 나 자신이 전혀 훌륭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내가 지녔던 사람에 대한 지나친 기대 때문에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을 고통을 겪어야 했고, 자신까지 괴롭히며 살았던 것 같다. 직장에서 은퇴를 하고 나서 사람들과 부딪칠 일이 줄어들었다. 그 덕분인지 나이 들어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런대로 괜찮아 보인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을 대하는 게 예전처럼 부담스럽거나 불편하지 않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것도, 그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면 된다, 정도로 바뀌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는 말에도 공감한다. 물론 인간은 천차만별이다. 외모뿐 아니라 도덕적 수준이나 인격적 수준에서도 그렇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도 있고 남을 속이는 사기꾼들은 너무 많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못된 인간도 그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바라보면 평등하게 소중한 존재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도 그 시간에는 정말 그게 잘못인지 몰라서, 내 욕심에 사로잡혀서, 내가 어리석어서 잘못 판단하고 행동했던 일들이 많았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들을 보면 아, 저 사람이 분노에 사로잡혔구나, 욕심에 눈이 멀었구나, 자기 생각과 감정에 붙잡혀 있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사람을 포함해서 모든 생명체들이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는 걸 막연하게나마 깨닫게 되었다는 게 나이가 내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