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아리랑
남한과 북한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젊은 날 친구가 던진 질문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한동안 그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반공 포스터 그리기와 반공 표어 짓기, 반공 글짓기, 반공 웅변대회, 반공 궐기대회를 연중행사로 개최하던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를 비판하면 빨갱이로 몰려 잡혀간다며 입조심하라는 주의를 들으며 직장 생활을 했다. 어디서 누가 고발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우리나라 대통령은 항상 박정희 대통령이었고 위대하신 대통령 각하에 대한 예절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런데 그 대통령의 숨겨진 이력을 알게 되었을 때 배신감을 넘어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조작되고 왜곡된 역사 너머로 비밀스럽게 감추어지고 가려져 있는 사실을 알아내고 싶었다. 정치와 역사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고 들으면 잡혀가는 세상이었다.
친구의 질문에 나름대로 답을 찾는 데 도움을 받은 책이 ‘아리랑’이었다. 미국의 기자, 님 웨일즈가 기록한 혁명가 김산의 일대기인데 당시 내가 그 책에서 받은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 책을 읽은 뒤에도 오랫동안 그 책이 안겨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아리랑’에는 김산의 개인사뿐만 아니라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광대한 공간을 배경으로, 갖가지 사상과 이념을 지닌 역사적 인물들의 활약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엄청난 고뇌와 사상으로 무장한 백전노장들의 눈물겨운 투쟁 앞에서 나는 인간의 강인함과 위대함을 보았다. 평화로운 시대, 편안한 환경에서 유약하게 살아가는 내 눈에는 그들이 모두 영웅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김산은 공산주의자였다. 일부 민족주의자들만을 독립운동가로 규정한 시기에 학교 교육을 받아온 내게 ‘아리랑’은 그 시대 테러리스트,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아리랑’ 외에도 러시아 작가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을 읽었을 때 마르크스는 휴머니스트였다, 는 예전에 읽은 글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의 모든 문화가 그러하듯 공산주의 사상 역시 시대의 필요에 따라 인간사에 등장했을 테고, 권력자들에 의해 왜곡되기도 하고 변형되기도 하면서 흘러왔을 것이다. 소련이 붕괴되었을 때 그 원인 중 하나로, 인간의 도덕성이 공산주의를 펼칠 만큼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던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욕망에 근거한다면 공산주의는 도덕에 기반하는데 욕망에 도덕이 패했다는 것이었다. 북한의 정치 체제를 두고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고 독재 왕조 국가라고 말한다. 나는 가끔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내가 여러 모습으로 변신하는 상상을 해 본다. 지금 고대 부족 국가에서 살고 있다면? 조선시대에서 살고 있다면? 북한에서 살고 있다면? 미국에서 살고 있다면? 그런 생각들을 하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내게 다른 의상이 입혀진다. 그리고 각기 다른 시대, 다양한 국가의 사고방식과 관습 같은 것들이 내 머리로 들어온다. 나, 라는 존재가 명확하게 고정된 것인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일어나고, 내가 옷걸이야? 마네킹이야? 로봇이야? 알 수 없네, 중얼거리다가 후후 웃는다. 인간을 두고 입력된 대로 움직이는 인공 지능 로봇과 흡사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가끔 서울에 간다. 소란스러운 인파 속을 걷다 보면 억지스러운 정치 구호를 외치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적대적 감정을 섬뜩하게 드러낸 플래카드를 보기도 한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부르짖는 이들에게 다른 주장은 들리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집 가까이 있는 산을 오르다가 쉼터에서 두 남자가 언쟁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시대에 친일파 아닌 사람이 어디 있었어요? 우리 아버지들, 할아버지들 다 친일파였지. 그러니까 살았지.” 나는 깜짝 놀라서 발길을 멈추고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상대 남자는 벗어두었던 등산 가방을 서둘러 둘러메고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가 할 말을 잃었는지 아니면 기가 막혔던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물러서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득의양양하게 승리의 웃음을 짓고 있는 남자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은 욕구를 나는 애써 눌려야 했다. ‘아리랑’에서 어린 김산이 왜놈 순사들을 두들겨 패려고 할 때 어머니가 제발, 제발, 하면서 애원했다는 장면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각기 다른 생각과 감정들이 저장되어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르게 저장된 생각과 감정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같은 것을 바라보면서도 각자 다르게 반응하도록 만든다. 서로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 사이에서는 늘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고, 갈등이 커지면 나와 다른 상대를 적대시하게 된다. 누군가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핏대를 올리며 주장한다. “그가 틀렸습니다.” “그는 나쁜 사람입니다.” “그들은 짐승이에요.” “그들은 악마들입니다.” 상대편을 악마화하면 죽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죽이는 것을 정당화해서 전쟁도 일으킨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불쑥 올라오는 감정을 젊을 때처럼 그대로 쏟아내지는 않는다. 신체적으로 늙고 왜소해진 만큼 마음은 크고 넓어졌다고 자부하고 싶다. 그러나 젊은 날의 내 눈으로 지금의 나를 보면 판단이 달라질 것이다. 현실에 굴복한 용기 없는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고 속단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젊은 날 친구가 던졌던 질문에 지금의 나는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