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이라면 죽어도 안 가는 내가 어느새 정상에?
11.7 투어를 원해서 갔다기보다 친구 따라서 간 바투르 일출 투어.
사실 가기 전까지만 해도 짱구에서 우붓으로 이동해서 15분 정도 걷고 지프차를 타고 그 위에서 일출을 보는 줄 알았다.
그마저도 새벽 1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에 전혀 난 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지만 난 이 투어를 간다는 친구랑 더 친해지고 싶은 그 이유 하나로 투어를 결정했는데 사실 이마저도 지프투어가 아니라 트레킹 투어였다..
그걸 사실 투어 6시간 전쯤 알았다. 나는 무슨 옷을 입고 찍을지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보고, 옷이 사진에 잘 안 나오면 바꿔 입으려고 배낭에 옷을 여러 개 담고 있었는데,
갑자기 트레킹 투어를 예약했다네.. 그렇게 가방에서 옷을 다 뻈다. 등산에 무슨 짐을 무겁게 가져가니.. 내 몸 하나 가져가기도 힘든데..
등산이라면 거들떠도 안보는 내가 갑자기 트레킹?
잠도 못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약 2시간을 차를 타고 또 2시간을 트레킹?
그렇지만 뭐 투어가 목적이 아니었으니까 친목이 목적이었지. 이런 목적지향적인 나..
가끔은 목적이 없는 사람이 있나 싶어요.
안 그래도 산 올라가면 춥다고 해서 여름옷 밖에 없는 나는 걱정이었는데 ‘
아,, 난 긴 팔도 없고 긴 바지라곤 엄청 얇은 여름 바지.. 그리고 신발이라곤 쪼리와 크록스뿐.
당황하긴 했지만 뭐 어쩌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우붓으로 이동할 거였어서 투어 하는 겸 지역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2시 반 픽업이었기에 8시 좀 넘어서 바로 잠을 청했고 생각보다 잠이 잘 왔다.
그리고 자동으로 12시에 눈이 떠지길래 씻고 짐을 다 챙겨서 차에 탔다.
나와 내 친구가 타고 그 뒤에 3명이 더 탔다. 그분들은 역시나 다 호주 사람들이었고 한분은 혼자, 두 분은 커플이 셨다.
새벽이라 그런지 막히지는 않았지만 차의 승차감이 좋진 않았다.
그렇기에 약 2시간 북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우리 앞 좌석에 앉은 커플, 두 분 다 거진 차를 멈추고 속을 고르기를 반복했고,
겨우 트레킹 장소에 도착하고 나서 다시 돌아가는 걸 선택하셨다.
이 투어 하려고 이 새벽에 일어나신 건데 그 고생을 하시고 다시 숙소로 돌아간다는 것에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그리고 오늘 일출 트레킹 하는 사람들이 다 모여서 간단한 간식을 먹었다.
약 50명 정도는 돼 보였는데 또 동양인은 한 명도 없었다.
굳이 신경 쓸 것도 아니지만 항상 그럴 때면 특별함과 동시에 외로운 느낌 ^^
그렇게 남은 우리 3명과 같이 트레킹을 할 가이드와 함께 트레킹이 시작됐다.
진짜 이 야밤에 등산이라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에 우린 라이트를 머리에 고정한 채로 등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한 지 별로 되지도 않았는데 종종 등장하는 낙오자들,,
그 끝에 내가 있을 것 같아 두렵긴 했다.
난 운동을 주기적으로 하지도 않고, 체력이 정말 바닥인데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난 그냥 정말 친구 따라온 건데 걘 힘든 기색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같이 온 호주 언니도 나와 비슷한 것 같아 위안을 받으면서 중간중간 계속 쉬면서 올라갔다.
중간중간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아니 트래킹 투어에 돈을 이렇게 많이 썼는데 어떻게 돈을 또 쓰니.
그리고 올라가고 싶었다 어떻게든 내 다리로.
해는 하늘을 예열하기 시작했고,
밝아지는 하늘을 보며, 얼마 남지 않았음에 가이드에게 계속 얼마나 가야 하는지를 물으며,
마침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운이 좋았던 건 날씨가 좋아서 일출을 보는 게 너무 아름다웠고
어두컴컴한 밤부터 걸었기에 그 빛이 더 가치 있게 느껴졌다.
내가 혼자 여행을 했으면 절대 안 했을 투어.
그래서 특별했고, 그 아침이 더욱 밝았다.
내가 원했던 여행,
절대 예상하지 못한 무작위의 것들.
이게 그중의 하나였다.
내가 원했던 여행의 의미.
친구를 따라왔다고 했지만 사실 겸사겸사 원래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나의 선택.
그 정상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새로웠다.
어느 날보다 태양은 밝게 빛났으며, 얼굴 위로 쏟아지는 햇빛은 이 세상에 존재함을 축복으로 안아주는 것 같았다.
이 멋진 풍경을 누릴 자격이 있음을.
이렇게 마실 나온 사람의 옷차림으로 등산을 했는데 다치지 않고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정상에 올라갔는데도 별로 춥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그리고 나라면 절대 안 했을 투어에 데려가준 조시도.
하품과 함께 커피투어까지 마치고 우붓에 도착해 바로 낮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