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의 가치 20 _ 2020년 12월 11일
"옳게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뭔가를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애쓰는 일을 알렉산더 테크닉에서는 '함doing'이라고 부른다. 이는 잘못을 반복하고 있으면서도 습관이 되어 자신에게 익숙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일을 열심히 하는 걸 뜻한다. (중략)고집스런 둔재의 불행, 어쩌면 인간 모두의 불행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할 것이다. 이런 경우에 속한다면, 깨어 있는 시간 전부를 피아노 연주에 쏟아 부어도 실력은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김연수 <시절일기> 중에서
몇 년 전 좋아하는 작가인 김연수 산문집 <시절일기>가 나왔다. 신작 소설을 기다리지만, 간간이 발간되는 산문집도 좋아 무조건 사서 읽는 작가 중이다. 그 책 중 부분은 <다시 피아노(Play it again)>(앨런 러스브리저, 포노)이라는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다. 여기서 '함doing'의 개념이 딱 눈에 띄었다.
2010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해 가을에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드라마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비장한 각오로 뭔가를 시작하려 할 시기인데, 아이러니하게 나는 과거를 돌아보고 있었다. 취업을 했고, 수입이 생겼다. 드라마를 시작하면 지금의 일상에 또 하나의 일상이 더해져 더 바쁘게 살아야만 한다. 여유가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해보는 게 어떨까? 그렇게 고민하다가 악기 하나를 배우기로 했다.
피아노, 바이올린 같은 클래식 악기도 좋았다. 절망부터 환희까지,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중간 음역(?) 악기들을 좋아했다. 그런데 문득 고모네 집에 내 동생과 고종사촌이 치다 버려놓은 낡은 기타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래, 기타로 하자. 기타 또한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니까.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기타학원에 등록해서 3개월간 기타를 배웠다.
매일 한 시간씩 연습했다. 약속이 없는 날 퇴근길엔 꼭 연습실에 들렀다. 그렇게 어느덧 기타의 주법과 기본코드가 손에 익었다. 기타를 시작하고 세 번째 달이 끝날 무렵, 나는 학원을 그만두고 기타를 잘 치는 일반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동호회에 나갈 계획이었다. 학원비가 너무 비싸서 그때 내 월급으론 저금을 포기하고 다니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원장선생님께서 나에게 악보를 하나 건넸다. 코타로 오시오라는 일본 기타리스트의 곡 'Wind song'이었다.
처음 기타학원에 들어가서 크로메틱이라는 손가락 연습을 한창 하고 있을 때 많아 봐야 중1? 그냥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한 아이가 연습하던 곡이었다. 이 곡을 내가 연습할 수 있게 된 건가?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 자리에서 그만둔다고 말하고 악보만 받아서 나왔다. 원장선생님은 마지막 레슨을 마치고 나가는 나를 향해 말했다. “학원에 나오지 않더라도 꼭 연습해보세요.” 라고.
그 곡은 내게 숙제 같은 것이었다. 원장선생님의 마지막 말 때문은 아니다. 반 음 식의 음계를, 그러나 무슨 음인지도 모르고 쳐나가는 크로메틱을 더듬더듬하며 그럴싸한 연주곡을 치는 초등학생을 보던 그때의 강렬한 감정 떄문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열등감? 승부욕? 십수년이나 늦었지만 나도 한다. 뭐 이런?
그래서 기타를 시작한 지 1년째 접어 들었을 때 그 악보를 다시 폈다. 그것보다 수준이 낮은 다른 연주곡을 끝까지 칠 수 있게 되었을 무렵이었다. 나가게 된 동호회에 요일별 소모임 중에 연주곡을 하는 모임에도 나갔다. 그렇게 그 곡을 정복하려 했으나, 사실 그 곡으로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은 그로부터도 2년 뒤. 그러니까 기타를 시작한 지 딱 3년이 되었을 무렵이다. 그것도 마지못해서, 포기하기 없다는 동호회 내에 무수한 나의 선생님 중에 한 분의 협박(?) 때문에 해낸 결과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 선생님에 대한 일종의 의리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동안 '함Doing' 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연주곡은 왼손을 네손가락으로 지판을 짚어가면서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모두 퉁겨서 소리를 내는 것이다. 때론 왼손이 지판을 두드려서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그건 고급기술이다. 그것을 핑거스타일이라고 한다.
코드를 배울 즈음, 초보가 힘겨워하는 것은 사실 왼손이다. 왼손의 힘이 어느 정도 받춰주어야 소리가 깨끗하게 나는데 특히 여자들은 힘이 약해서 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코드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 그건 짚는 위치의 정확성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된다. 악력으로 따지자면 약하기 그지 없는 나 또한 모두 다 해냈는데, 그건 힘이 늘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위치를 정확히 짚어 내서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러는 동안 오른손에 등한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한 손가락으로 한 개의 줄을 튕겨 소리를 내는 핑거링을 할 때에 나쁜 습관을 가지게 됐다. 손목을 비틀어 손을 어느 정도 수평으로 해야 고른 소리가 나는데, 나도 모르게 비스듬히 쳐서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으로 치는 음에는 쇳소리가 났다. 그것도 한음 한음 신경 써야하는 연주곡을 치면서, 그나마 귀가 열리면서 느끼게 됐다. 말하자면 시작한 지 3년이 가까워져 올 무렵에 깨달은 것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자신은 옳다는 느낌에서 벗어나는 일, 알렉산더 테크닉의 용어로는 'undoing'이다. 이건 '함을 하지 않음'으로 번역하는 게 좋겠다. 그러므로 앞에서 말한 것들을 하나하나 부정하면 'undoing'에 이를 수 있다. 즉, 우선 습관적인 행동에서 벗어나고, 익숙하지 않은 방법을 찾아보고, 나만은 옳게 한다는 느낌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아들여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배운다.(중략) 이런 주장은 다시 목적지향적인 행동을 하지 말고 과정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김연수 <시절일기 중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3년이 다 되었을 즈음이지만 자세에 대한 지적을 이미 들어본 것이었다. 자세를 그렇게 하면 소리가 고르지 못하다면서, 거울을 보며 연습하는 것으로 교정을 하라는 지적을 들은 적이 있다. 몇 번 그렇게 해보았으나 한번 흐트러진 것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불편해서 다시 익숙한 것으로 돌아갔다. 기타 연주의 목적은 나의 만족이었기 때문에, 내게 들리지 않은 미세한 소리의 차이를 위해 이렇게 힘들게 연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당장 1년쯤 뒤에 귀가 열리게 될지 모르고서.
'Wind song'을 완곡으로 연주하던 날, 나는 듣기 좋은 연주라는 칭찬을 받았으나 여전히 4번 손가락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사실 그 연주회는 기타 연주 대회였는데, 거기서 1등을 했으나 그 대회 역사상 가장 실력 없는 1등이라는 것이 나의 자평이다.
책의 내용을 읽고서 기타를 치던 시절을 떠올리게 된 것은 "목표지향적인 행동"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다시 시간을 되돌려보자. 처음으로 기타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등록하러 갔을 때 내 첫 질문은 이것이었다.
"한 곡을 치기 위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그 질문에 원장선생님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 치고 오래 치는 사람이 드물다고 한다. 훗날 꾸준히 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며 했던 말이다. 그러나 그 날의 내 질문은 그 후 3년을 지배했다. 한 곡 한 곡 정복하는 그 맛에 기타를 쳤다. 공연이 잡혀 있으면 더욱 진지해졌다. 공연할 곡을 무한 재생으로 듣고 다니고, 거의 매일을 연습하는 시간도 있었을 정도니까. 목표지향적으로 행동하는 덕분에 빨리 늘었지만 끝내 4번 손가락으로 치는 음은 언제나 쇳소리가 나는 상태였다.
"목표지향적인 행동"은 비단 기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10년 동안 꾸준히 극본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공모전이라는 목표 때문이었다. 공모에 맞춰 마감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자평하며 끊임없이 마감을 향해 달리는 동안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일까? 4번 손가락은 소리로 단번에 알아차렸지만, 글쓰기에서 놓친 부분을 알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어쩌면 귀가 열리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나이가 들었든, 육체적으로 뭔가를 새로 배울때는 반드시 'Undoing'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건 지금까지 제 몸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으며, 심지어 잘못 사용하고 있었음에도 자신만 옳게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그걸 인정해야만 제 몸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럴 때만이 목표지향적으로 행동하는 덕분에 늘 목표를 이루지 못해 남을 탓하는 삶에서 벗어나, 과정에 몰두하며 매일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김연수 <시절일기> 중에서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내게 필요한 문구라고 생각해서 큰 종이에 이와 관련된 모든 내용을 받아 쓰면서도 솔직히 말하면 이 글 자체가 불편했다. 차라리 4번 손가락은 무시하고 넘어 갈 수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기타리스트가 될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좁은 동호회 내에선 1등도 하는 연주자였으니까.
글쓰기는 다르다. 마치 공연을 준비하는 것처럼 같은 패턴과 순서를 반복하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만 한다.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한지 만으로 4년이 되었다. 여전히 오리무중인 해답을 찾아내지 못하면 10년의 시간 동안의 모든 것이 소용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지금은 책의 내용이 불편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과거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뭔가를 새로 배울 때 반드시"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필사를 했음에도 그땐 이 문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나는 Undoing의 과정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