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의 가치2_ 2014년 2월 18일, 한 드라마 보조작가의 푸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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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열일곱 살이던 나는 만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2008년, 스물네 살이 되어 나는 7년 만에 그 꿈을 완전히 접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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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학원 강사로 일한지 4년이 된 무렵 나는 한계라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한국 방송작가협회 교육원 전문반에 다니고 있었고, 드라마에 완전히 미쳐 있었다. 내 담당 선생님은 꽤 존경할만한 드라마 작가였다. 그 수업을 들은 후 나는 그 분이 걸어간 길을 뒤따르기 위해 애썼다. 드라마에 대한 열망이 커갈수록 강사라는 내 현실이 싫었다. 드라마만 하면서 살면 행복할 것 같았다.
2013년 1월 국어 강사를 그만 뒀다. 그리고 생각했다. 글을 써서 돈을 번다는 목표를 정하고 두 가지 계획을 세웠다. Plan A 드라마 보조작가가 된다. Plan B 경쟁률이 낮은 작은 공모에 응모해서 당선금으로 용돈을 쓰고 습작에 매진한다. 그해 5개월 Plan A가 성공했다. 보조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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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때 내 인생의 롤모델은 서태지였다. 그래서 나도 서태지처럼 스무 살에 내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 막연히 믿었다. 그때 내 꿈은 만화가였다. 18살이 되던 해,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만화가 문하생이 되기로 결심했다. 바로 실행에 옮겼다. 만화가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공고에 지원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장은 모두 거절. 고등학생은 안 받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딱 두 곳에 더 보내봤다. 그중 한군데서 연락이 와 일단 얼굴을 한번 보자고 했다. 멀끔한 얼굴을 한 남자 작가였다. 카페로 나를 데려간 그는 나에게 파르페를 권했지만, 나는 비엔나커피를 마셨다. 아이스크림이 둥둥 뜬 커피를 바라보다가 그분이 하는 이야길 듣기위해 그분을 보다가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자신을 데뷔를 앞두고 ‘세이브 원고’를 하고 있는 만화가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작업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대답했다.
“상관없어요. 작업할 수 있는 공간과 책상이면 충분하거든요.”
고생이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던 순진한 시절이다.
그 작가는 나를 문하생이 아닌 제자로 받아줬다. 그냥 화실을 왔다 갔다하면서 배우라는 것이다. 화실은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가야하는 왕복 세 시간 거리에 있었다. 겨울방학 때였는데, 보충수업 마치고 갔다가 해가 진 후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열심히 다닌 건 아니다. 토요일 일요일 꼬박꼬박 쉬면서 학교 보충수업 끝나고 겨우 너댓시간을 화실에 머무르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그래도 그때는 열심히 다닌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화실에 가는 것이 즐거웠다. 식구들 다 자는 밤에도, 수업 시간에도 나는 늘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늘 조용히 은밀히 이루어지는 행위였다. 화실은 그림 그리는 공식적인 공간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즐겁게 몰입할 수 있었다.
한참 후 그 시절 나를 떠올렸을 때 문득 의문이 생겼다. 화실이 왜 좋았을까. 버스 정류장에서 오르막길을 오르고 올라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쯤 도착하는 산동네에 허름한 집. 보일러도 되지 않고, 화장실도 냄새나는 재래식. 멀고 불편하기 짝이 없던 그곳이 단지 그림을 그리는 공간이라 좋았을까? 내가 그림을 그렇게까지 좋아했나? 혹시 학교가 아니라서 좋았던 것은 아닐까. 내가 만화를 좋아했던 건 공부가 아니라서였을까, 아님 만화라서였을까. 어느 쪽이었는지는 여전히 내게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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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나는 스스로 "꿈에 안주하고 있다."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이 무료하고 긴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은지도 오랜시간이 지난 뒤였다. 물론 그림도 별로 그리지 않았다. 결단의 순간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열심히 제대로 꿈을 향해 가던지, 그냥 그만두고 다른 것에 매진하던지. 무엇이든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시간을 끄는 것보단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같은 만화동인회 멤버였던 언니가 한 만화가들의 모임에 함께 나가자고 했다. 그 자리는 부산의 여자 만화가들의 송년회 자리였다. 거기서 여자 만화가들을 처음 만났다. 그 전까지 내가 만난 만화가들은 남자들이었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그들이 낯설고 신기했다.
부끄럼이 많던 나는 평소 그려뒀던 일러스트들을 가져갔으나 좀처럼 보여줄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함께 갔던 동갑내기 멤버가 선수를 쳤다. 나또한 슬며시 그림을 내보였다. 작가들이 내 그림을 보는 동안 여기저기서 “이야, 이건 누가 그린 거야?” 묻고 감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용기를 내어 당시 내가 하던 고민에 대해 이야기했다. 식어버린 꿈에 대한 열정, 꿈에 안주하는 현실. 내 이야기를 잠차고 듣던 한 작가가 말했다. 왜 원고를 가져오지 않았냐고.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사실 보여줄만한 원고가 없었다. 나를 지켜보던 그 작가가 말했다.
“우선 원고를 해라. 출판사에 가져가서 보여줘라. 그래서 욕을 한번 먹어봐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봐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밤이었다. 두꺼운 겨울 점퍼가 눅눅해져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나머릿속은 가볍고 심플해졌다. 그래, 욕을 한번 먹어보자! 욕을 먹어도 계속하고 싶다면, 그건 정말 계속해야하는 것이니까.
대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내내 하루에 3시간에서 4시간 정도, 나중엔 6시간에서 8시간 동안 작업에 매진했다. 어깨가 결려오고 손가락이 아파왔다. 나중엔 드림 그릴 때 쓰는 펜대만 잡아도 손가락이 끊어질 듯했다.
그때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지금껏 한 번도 이렇게 열심히 그려본 적이 없구나. 만화 시작하고 일곱 해가 지나도록 내 손가락이 이렇게 약하다는 걸 모를 만큼 안일했구나.’
‘프로가 되면 이 통증을 계속 달고 살아야 하는구나.’
이제 와서 이런 것들을 깨닫게 된 것이 스스로 몹시 민망하고 창피했다. 아마도 그때 꿈을 포기하게 될 결말이 예견되었는지도 모른다.
겨울 방학이 끝날 무렵 어느 정도 완성된 원고를 들고 출판사에 갔다. 서울 신용산역 주변에 만화 출판사들이 모여 있단 시절이다. 세 개의 출판사와 약속을 잡았다. 첫 약속은 S출판사였다. 그때가 스틸컷처럼 기억에 남아 있다. 미리 알아간 지도를 따라 출판사에 도착했다. 아담한 흰색건물. 1층에 편집부에 호출할 수 있는 전화기가 놓여 있었다. 약속한 시간과 기자의 이름을 대자 그가 나왔다.
로비엔 여러 개의 책상이 놓여 있었는데, 그 중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자리로 그는 나를 안내했다. 내 원고에 햇볕이 비추자 엉성하게 깎은 스크린톤, 엉성한 붓질 등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렇게 나의 앝은 노력의 실상이 햇볕 아래 발가벗겨졌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해보세요."
두 명의 기자를 만난 후 자존심이 완전히 찢긴 내게 마지막으로 만난 기자가 한 말이다. 순간 조금 더 해보자고 했다. 무엇보다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것. 제대로 노력해 보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그만두고도 후회할 것 같았다.
스스로에게 6개월의 기간을 주고 매일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얼마나 어떻게 발전하는지 지켜봤다. 발전의 폭이 얕았다. 출판사에서 말한 대중적 스타일의 그림으로 변화하긴 했으나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진 않았다. 나의 재능은 여기까지구나. 겨우 인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깨끗이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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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한다면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길 포기한 후에도 열심히 하지 않은 나를 원망할까? 전문반 선생님을 만난 후, 나는 '열심'의 기준이 달라졌다.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지만 그것으로 부족하다. 예술가들을 위해 누군가 쓴 어떤 책의 구절처럼, 내 작품을 위해 성직자처럼 헌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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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A가 성공했으나 나는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렸다. 내가 보조작가로서 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작가의 한마디 한마디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작가 한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했다. 그것이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나의 노력이다.
더 이상 창작이 즐겁지 않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시간이 올 거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만화가 언제부턴가 즐겁지 않았으니까. 꿈이란, 처음엔 설레고, 즐겁다가도 어느 순간 내 안에 구멍을 만든다. 빨려 들어가서 헤어 나오지 못할 구멍. 구멍에 갇힌 채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즐겁지 않다. 다시 돌아 나올 수 없다면 끝까지 가서 반대쪽으로 나가야 한다. 반대쪽엔 빛이 있을까?
평범하지 않은 꿈을 꾼다는 건은 외롭다. 아무도 나를 온전히 이해하거나 위로할 수 없다. 방법은 그저 부지런히 발을 움직이는 것뿐이다. 뒤돌아 보아서는 안된다. 주변을 보지도 말아야 한다. 흔들려 주저앉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반대쪽에 도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끝까지 가보지 못한 채로 영원히 터널 속에 갇히는 사람도 있다. 많이 걸어 들어갔을수록 나오는 데에 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즐겁지 않다. 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런 생활이. 도대체 왜지?
벌써 깊숙이 들어와 버렸구나, 순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