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써야 예술이다

방황의 가치 43_ 2021년 9월 13일

by 오랜

2018년에 처음 만나 몇 년간 나의 스승이었던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J작가는 시나리오를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이 싫다고 하셨다. 언제나 상업주의를 부르짖는 분이기 때문에 부연 설명을 듣지 않아도 시나리오를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작품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처음으로 나오는 뜻이 ‘만든 물품’이라는 의미이지만 두 번째 뜻을 보면 ‘예술 창작 활동으로 얻어지는 제작물’이라고도 되어 있다. 그는 상업주의를 기반으로 쓴 시나리오는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었다.


며칠 전 포털 싸이트에서 가장 큰 시나리오 작가 카페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글을 쓰는 것도 예술인가요?’ 글의 내용은 이러하다. 글은 이성적인 생각으로 쓰는 것이지 감수성으로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술이 아니다. 감수성으로 글을 쓰는 것은 최고의 경지에 이른 작가만이 가능하다. 이 글을 쓴 사람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의아해졌다. 그 글이 의아한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글쓰기가 왜 예술인지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예술이 무엇인가. 감수성으로 만든 것인가. 아니면 고집스러운 작가주의로 만들어진 것인가. 사전 속 예술의 의미에 이런 말도 있다.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감상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을 보고 ‘아름답다,’ ‘놀랍다,’ ‘재미있다.’라고 느끼는 것과 더불어 몰입과 공감의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예술이 맞지 않나?




상업주의와 예술을 구분 짓는 가치관은 남의 돈으로 글쓰면서 자기 작품의 정체성을 고집하는 작가들에 대한 멸시가 담겨있다. 작가주의할 거면 네 돈으로 하라는 일종의 비아냥인 셈이다. 그래서 많은 영화나 드라마계의 기성작가들 혹은 감독들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작자가 쓰고 싶은 글도 쓸 줄 알아야 하고, 자기가 쓴 글이라도 남의 의견을 받아들여 고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물론 동의한다. 내가 드라마 보조작가를 통해서 여러 드라마 작가와 협업하며 느낀 것이 작가는 글을 잘 쓰는 것은 기본이되, 반드시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소통은 결국 경청의 기술이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가 말에 담지 않은 것까지 알아차려야 성공할 수 있다. 보조작가 시절 내 메인 작가 중 한 분이 제작사로부터 “주인공의 회상이 나오는 이 시퀀스는 재미가 없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작가는 그 씬을 빼버렸다. 재미가 없으니까. 지독한 상업주의 작가인 그는 재미만이 드라마의 최고 목표라고 말했으니까. 그렇게 배경과 설정에 관련된 씬에 대한 지적이 계속해서 들어왔고 그 씬들을 모두 뺐다. 그러자 입체감은 커녕 캐릭터조차 모호한 드라마가 탄생했다.


이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그저 따라가기만 했기 때문이다. 재미없는 씬을 빼라고 한 적이 없다. 그저 재미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작가라면 재미있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야 한다. 그저 무책임하게 빼버리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가 살아있지 않은 이야기가 재미있을리는 없다. 지독한 상업주의 덕분에 이 드라마는 결국엔 상업주의와 완전히 멀어져버렸다. (이 드라마는 약 2년 반이 흐른 후 TV에 방영된다. 컨셉의 일부를 바꾸고. 아니, 사실상 전무하던 컨셉을 만들고 사라져버린 캐릭터와 관련된 씬들을 보충한 상태로 TV에 나왔다.)


캐릭터가 없어도 재미있을 수 있지 않냐 물을 수 있다. 재미란 상황의 재미나 대사의 재미 같은 것도 있으니까. 주로 개그 꽁트에 쓰는 기법들이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이야기가 추구하는 재미는 다르다. 그야말로 감상할만한 것. 몰입과 감정이입이 가능한 것이라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모든 이야기의 초반에는 매력적인 주인공의 모습을 정성스럽게 보여준다. 주인공에게 호감이 가야 그 이야기에 빠져들어 주인공의 모든 액션을 따라갈 수 있으니까.


글쓰기가 예술이냐 물었던 시나리오 작가 카페의 회원이 간과한 부분도 이것이라고 본다. 결국 관객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감상하게 할 것인가. 관객이 독자가 몰입하여 감상하게 하는 것은 확실히 높은 수준의 작가가 구연할 수 있는 최고의 영역인지 모른다. 덧붙여 이야기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어떤 이야기이든 독자가 감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이야기에 있어서 ‘감상’이란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높은 차원의 가치이다. 그러므로 상업주의든 작가주의든 모든 이야기는 예술이다.




얼마 전 데뷔한 적이 없는 작가 지망생이 쓴 미니시리즈 기획안을 읽었다. 어떤 캐릭터를 구연할 것인가를 알기 어렵고, 이 드라마 속의 “드라마”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기획안이었다. 수사물이었기 때문에 수사와 관련된 사건만을 나열한 기획안. 15부까지 구성된 기획안이었는데 도저히 끝까지 읽을 수가 없어서 4부까지 읽고 일단 덮었다. 캐릭터와 드라마가 없으니 몰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 물론 재미있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도 없다.


그 작가 지망생은 ‘아직’ 캐릭터나 드라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이 없이 줄거리만 서른다섯 페이지를 썼는데, 캐릭터와 드라마를 생각하지 않았다니 어이없는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실은 자기가 편한 대로 쓴 것이다. 먼저 생각나는 대로, 겉껍질부터 만들어낸 것. 그러나 툭 건드리면 완전히 무너져 버릴 성을 크게 쌓으면 무엇하겠는가. 안을 탄탄하게 채우지 않으면 서른다섯 페이지는 쓰레기나 다름이 없다.


글이, 이야기가 예술인가? 이 질문이 왜 나오는지 알 것 같다. 결국 내실을 채우는 작업을 소홀히 하는 과정에 내가 하는 이 일이 예술인지에 대한 자문이다. 쉽게 쓴 글은 예술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부분부터 차근차근. 작가가 어렵게 써낸 글이라야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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