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산다는 것, 잘 쓴다는 것

방황의 가치5_2021년 2월 4일

by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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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이번 주는 맥주를 마시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으나 밤이 되니 한잔하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9시경, 서울 경기 지방에 폭설주의보가 내린 시간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함박눈이었다. 부산에서 28년간 살았고 서울과 경기도에서 산 9년 간은 작업실에 갇힌 채이거나 칩거 상태로 글을 쓰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주변에 사람이 있어 강아지처럼 뛰어다니진 못했지만, 팔을 흔들며, 춤인지 무엇인지 모를 몸짓으로, 쌓여가는 눈길을 뽀득뽀득 걸어 슈퍼로 갔다. 누가 보면 어디가 좀 모자란 사람 같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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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눈을 싫어했다. 20대 초반,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즈음에 부산에 어마어마한 눈이 내린 적이 있었다. 사실 서울을 기준으로 하면 많은 눈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이라곤 거의 오지 않는 부산에선 교통이 마비될 정도의 폭설이었다. 그날 나는 친할머니댁에 있었다. 무슨 이유로 거기 갔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폭설이 내린 밤 무슨 이유로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는지 또한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엄마와 단둘이 집에 가야했다는 것 밖에.


늦은 저녁 도로로 나가보니 길은 빙판이 되어 있었고, 자동차는 거의 다니지 않는 상태였다. 건너편 차선으로 지나가는 차는 튕기듯 그러나 묵직한 돌돌돌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타이어 감은 체인이 얼음에 부딪치는 소리였다. 겨우 택시를 잡아탔다. 그러나 그 기사는 우리집 근처 도로로 갈 수 없다고 했다. 아마 합승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내렸다. 엄마를 붙들고 빙판을 조심조심 걸어갔다. 그때 엄마가 수술 후 퇴원한 지 일주일이 안 된 시점이었다. 혹여 빙판에 넘어져 수술한 부위가 잘못될까, 조마조마했다. 그 지옥 같은 30분의 기억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눈을 싫어하게 되었다.


물론 눈 많이 오는 경기도로 이사 와서도 그랬다. 눈이 오는 날이면 짜증부터 났다. 그런데 어제 눈을 보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스스로를 자각하고서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변화에 기민하게, 변해가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어떤 삶이든, 솔직하게, 그렇게 나이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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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엔 더 이상 "지망생"이고 싶지 않다는 목표로 내 남은 30대를 설계하고 앞으로 가고 있다. 요즘엔 끝에서 몇 번째 쯤일 공모전 준비에 한창이다. 올해 첫 번째 공모전에 응모했고, 이제 두 번째 공모를 시작한다. 총 네 개의 작품을 준비 중인데, 그중 첫 번째 공모전에 응모했던 단막극 극본을 수정하는 중이다.


준비 중인 네 개의 컨셉 중에 세 개 정도가 구체화되었다. 함께 작업했던 시나리오 작가님께 시놉시스를 보내서 피드백을 들었다. 지금 쓰고 있는 단막극에 대한 피드백도 함께 들었는데, 어김없이 나만이 가치관과 시선에 관한 이야기를 하신다. IMF시대라는 특별한 배경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그 시대에 대한 나만의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인의 경험에서 나온 아주 독특한 시선을 담아 글을 쓰면, 그 글이 퍼스트 독자(모니터해주는 사람들)에게 잘 가서 닿질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이해를 잘못하는 것 같다. 나의 퍼스트 독자들은 으레 본인들의 글도 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해가 되는 만큼만 이해한 후, 전체를 상상하여 비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인의 생각을 담아 그저 평이하게 해석하는 경우도 꽤 많아서 간혹 "뭔소리야?"할 때도 있다. 그러나 보편적 시선과 감정을 담으면 익숙하다고 한다. 조금만 익숙한 구조를 써도 전체적으로 평이하다고 말한다.


도대체 신선한 것과 평이한 것의 기준이 무엇일까? 당선이 되는, 잘 쓴 대본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간혹 이야기하지만 지금은 내가 확실하게 알고 결론 내린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하루하루 써나간다. 이번 수정본은 지금까지 보기에 (다시 큰 구성을 만들고 기획안을 쓴 상태에서 보기에) 전 버젼보다 훨씬 탄탄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좋은 결과를 노려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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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밤 늦게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잘 있냐면서 꿈에 내가 보였는데, 아주 안 좋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목소리부터 걱정에 질린 듯 느껴져, 무슨 꿈인데? 했더니 지금은 말할 수 없다고 전화를 끊는다. 결국 다음날 엄마의 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내가 자살하겠다고 했단다. 엄마는 뜯어 말리다가 꿈에서 깬 모양이다.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작가가 되지 못하면 자살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꽤 오랫동안, 꽤 심각하게 그랬는데... 지금은 딱 그렇게 되리라 생각하지 않지만, 목표가 없는 삶에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할 수 없다.


엄마는 자꾸만 이상한 쪽으로 상황을 몰고 가 본인이 안심하려 한다. 내가 결혼만 하면 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 날 결혼시켜야 본인 인생의 숙제가 모두 해결된다는 강박이 있는 사람 같다.


나는 결혼이 내게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 삶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을 깊이 사귈 수록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지점, 참을 수 없는 구석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서로에 대한 책임이 없으니 밀어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결혼이란 것은 다수의 낯선 사람과 연결되어 책임을 가져야 하는 사회적 제도다. 참을 수 없는 구석을 만났는데, 책임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게 닥칠 무기력함 같은 것이 솔직히 두렵다.


아무튼 엄마의 착각에 제발 서른여덟까지만 내버려두라는 나의 간곡한 부탁을 져버리고 큰 고모가 소개했다는 어떤 남자와 맞선을 앞두고 있다. 마흔셋의 노총각? 법대를 나와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을 하는 분 같은데... 뭐랄까 참, 서툴고 엉뚱하고 불편하게 깍듯한 사람이다.


어쨌거나 만나보자 했던 건 그가 일반회사에 3년을 다니다가 다시 법조계로 오게 된 이유 때문이다. 매일이 똑같은 회사생활이 지루했다고 한다. 이유는 어쨌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이 있었던 사람이라 만나는 보는 거다. 하지만 역시나 줄일수 있을까 싶은 갭은 있다. 평범한 삶을 살아온 사람의 가치관? 비슷한 세대라도 조금 보수적인 그의 성향과 아주 제멋대로인 나의 성향의 갭같은 거? 이를테면 나는 남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으나, 그에겐 "아니, 누나가 있는데?!" 할만한 일인 것 정도? 가치관의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해서, 잘 살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적당히 조건 맞춰 결혼하는 경우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누가 뭐래도, 나의 불완전한 삶이, 어쩌며 내게 최고일지도 모른다. 40대에 만약 최악의 경우,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른 선택을 했을 때 누군가가 "너 그렇게 다 던지고 드라마 하겠다고 덤빈 거 후회 안해?" 묻는다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확언할 자신은 있다. 솔직한 삶을 살았으니까. 욕망을 미래로 미뤄두고 목표 때문에 삶을 희생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희생에 결혼이나 적금통장 같은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렇다.


물론, 눈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또 달라질지 모를 일이지만... 잘사는 삶, 삶의 가치관의 차이가, 어쩌면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을 앞두고 나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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