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칼린 - 꿈의 다면성에 대해2

방황의 가치7_2021년 6월 13일

by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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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창작이 즐겁지 않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시간이 올 거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만화가 언제부턴가 즐겁지 않았으니까. 꿈이란, 처음엔 설레고, 즐겁다가도 어느 순간 내 안에 구멍을 만든다. 빨려 들어가서 헤어 나오지 못할 구멍. 구멍에 갇힌 채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2014년 2월에 쓴 나의 에세이 <꿈의 다면성에 대해>의 일부다. 2017년에 그간 써놓은 글을 모아 <방황의 가치>라는 에세이집 독립줄판을 준비하던 때에 이 글을 다시 보았다. 사실 놀랐다. 창작이 더 이상 즐겁지 않다니. 스물아홉 살의 내가 이런 생각으로 그저 보조작가의 일을 버티고만 있었다니.


2021년, 극본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지 11년이 되었다. 그 간 반복되어 온 것은 끊임없는 불안과 계속되는 거절이었다. 공모전에 떨어져 거절당하는 경험만이 쌓였고, 스스로에게 확신을 갖는 일은 점점 힘들어졌다.


2014년 그즈음 나는 그래도 극본에 대해서 잘 알아간다고 생각했다. 늘고 있다는 성취감은 분명 갖고 있었다. 어떤 극본을 써야하는지도 명확했던 것 같다. 오히려 지금 더 모르겠다. 좋은 극본이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을까? 그때보다 더 많은 작품들을 보고, 쓴 결론은 끊임없는 물음표다.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시간은 끊임없는 방황이다. 어떻게 해야하지? 어떻게 해야할까? 스스로에게 물어도 대답을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심지어 글쓰는 일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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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6일. 서촌 대림미술관에서 강연회가 열렸다. 무대감독 박칼린의 강연이다. 쉬는 날이었다. 월요일 오전에 출근해서 금요일 오후에 퇴근하던 보조작가에게 쉬는 날은 아주 귀한 날이다. 그래도 강연을 종종 들으러 다녔다. 시간이 맞는다면 역사나 사회학, 문학, 철학 등 글쓰기에 도움이 될만한 강연을 성실히 들었다. 사실 무대감독의 강연을 들을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박칼린의 강연을 들으러 간 이유는 그즈음 내가 꽂혀서 무한 반복 시청 중이던 한 영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중년을 전후한 남자들이 살면서 한번쯤 해보면 좋을 일,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경험하며 남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어 나간다.’ 라는 컨셉의 프로그램이다. 그 중에서 가장 대박 난 합창단 프로젝트의 지휘자이나 음악감독이 박칼린이었다.


박칼린은 성악과 출신인 두 소프라노, 선우와 배다해에게 ‘넬라판타지아’의 솔로를 맡기려고 했다. 둘 중 한 명이 될 수도 있고, 여차하면 둘이 될 수도 있는 상황. 어느 날 두 사람의 역량을 끌어내기 위한 보컬 트레이닝을 했다. 목소리가 예쁜 배다해는 성악을 그만둔 지 오래되어 호흡이 달리고, 성악의 기본기를 유지하고 있는 선우는 목소리의 매력이 달렸다. 그래도 트레이닝에서 단연 돋보인 것은 선우다. 배다해는 계속해서 잘못을 지적을 받았고 끝내 눈물을 보였다.


박칼린이 가장 중요하게 요구한 것은 메시지의 전달이었다. 곡이 갖고 있는 이야기. 그것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라. 두 소프라노의 노래는 예쁜 소리를 내는 기교에 집중되어 있었다. 박칼린은 집요하게 그 부분을 바꾸려 했다.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뚜렷한 시선을 전달하기도 하고,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문학을 전공한 나는 그것을 그저 몸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보조작가, 다시 말해 ‘작가’가 된 나는 그것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시청자에게 오락적 재미를 줄 것인가에 집중해야 하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내 메인작가는 이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어떤 것을 남길 것인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것은 잘못이 아니다. TV드라마가 주는 순간적이고 직관적인 재미는 분명 의미 있는 것이다.


원래 내게 있던 것이 메말라 가고 있음은 명백했다. 어떤 드라마를 쓰고 싶냐는 질문에 “마음을 물들이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답하던 나였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말하는 스스로도 모르던 시절이다. 그저 몸으로, 공기로 알고 있던 것일 뿐. 그러나 보조작가라는 일이 내게 결핍을 만들었고 그 영상으로 이끌었다. 일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끓어 오르는 갈증 때문에 밤마다 '넬라판타지아'의 메시지를 강조하는 박칼린의 말을 듣고 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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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의 내용은 지루했다. 솔직히 말해 빈정이 상했다. 열렬하게 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으나 저절로 재능에 의해 음악에 이끌려간 그녀의 인생은 드라마를 하고 싶지만 계속해서 재능의 한계 부딪치는 내 인생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괜히 왔구나. 후회할 때즈음 질의응답 시간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몇 번째 질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질문의 내용만 선명하게 기억할 뿐이다. ‘재미있어서 시작했고 즐겁게 해나갔으나 어느 순간 그것이 힘겨워 '일'로서 느껴진 적은 없는가.’ 그 해 2월에 쓴 ‘꿈의 다면성에 대해’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것에 대한 박칼린의 답은 이랬다.


‘힘들고 어려우면 일로 느끼는 것인가? 힘겨운 것은 무조건 일인가? 그렇다면 힘겹지 않은 것만 재미있어 하는 것인가? 모든 것에는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올라갈수록 성취해야 하는 레벨이라는 것이 있다. 올라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 어려워졌으니 일이되었다는 말에 공감할 수 없다. 자신 또한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다고 일이라고 느끼지는 않는다.’


어렵고 힘들지만 여전히 음악이 즐겁다는 박칼린의 대답에 나는 힘겨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열심히 들여다봤다. 나의 고통 안에 즐거움이 있는지. 고통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거운 일이 있는지. 그것이 내게 글쓰기가 맞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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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창작이 즐겁지 않다고 했던 스물아홉 살의 나는 두 달 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더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2021년 서른 일곱의 나는 여전히 글을 쓰는 일이 즐겁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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