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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의 여름

방황의 가치29 _ 2013년 8월 20일

by 오랜


올해 숙제 중 하나를 어제 끝마쳤다. 기한을 맞추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긴 낮잠을 잤고 작업실에서 자주 듣던 곡을 연주해보기 위해 아주 오랜만에 기타를 꺼냈다. 기타는 여름 습기에 닿으면 지판이 있는 긴 목 부분이 휘어지거나 몸통 부분이 통통해지기 마련이다. 긴 여름을 혼자 보냈음에도 내 기타는 꽤 멀쩡한 상태였다. 문득 습기를 견디며 망가지지 않은 기타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 본가 내 방. 고전을 욕심냈던 시절에 읽다만 <안나 카레리나>가 눈에 들어와서 어딘지 마음이 불편해졌다. 방 한 쪽에 지난 꿈의 흔적도 발견했다. 다신 내가 만족할 만큼의 성과가 나오기 전에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버티는 이 시간은 기타의 여름, 곧 시원한 가을이 올 것이다. 그동안 목이 휘지 않게 소리가 변하지 않게, 그러나 성숙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며 묵묵히 해보자.

쓸데없는 생각은 이제 그만 집어치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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