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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받을 자격

방황의 가치36_ 2019. 3. 10

by 오랜

퇴사 의사를 밝히 갑작스레 또다른 업무가 주어졌다. 늘 이런 식이었다. 예고 없이 일을 늘리는 것이 이곳의 일상이었다. 그만두는 마당에도 이런 식이라 하지 않으려던 많은 말들을 뱉었다.

“그래, 선생님 생각은 잘 알겠어.”

거의 울 듯이 말하는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상사는 이렇게 짤막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 무신경함에 화가 나 그저 끝날 날만을 고대하며 몇 주를 버텼다.


드디어 마지막 날. 갑작스레 주어졌던 그 업무들을 끝내기 위해 온종일을 달렸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 했을 그 무렵, 한 동료가 다가와서 의자에 선물을 뒀다며 귀띰을 한다. “별건 아니에요.” 했지만 금요일 휴무일에 시간을 내서 고르고 골랐을 정성이 고스란히 보이는 선물이었다.


어딜 가냐며, 왜 가냐며 칭얼거리는 어린 제자. 퇴근 길에 한 번 안아 보자 불쑥 포옹을 청하더니, 끝내 커피 쿠폰을 보내주는 또다른 동료. 이 공간 안에서 내가 이렇게 사랑받고 있었나,어리둥절한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있는 동안 나는 늘 글을 쓰지 못할까 봐 불안했던 것 같다. 일이 많아질수록 글 쓸 시간이 줄어드니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 부정적인 감정 떄문에 동료가 나에게 보내는 따뜻한 눈길, 애틋한 위로 같은 것들을 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나를 사랑하느라, 사랑받는지도 몰랐던 시간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그만둔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과거의 나에 대한 후회다.


이런 내가 사랑 받을 자격이 있을까. 어쩌다 난 이런 사람이 되어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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