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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 Nov 07. 2021

흔적

방황의 가치 46_ 2021년 11월 7일

1.

몇 주 쯤 전의 일이다.

카톡으로 동료이자 시인 지망생인 S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업무 때문에 연락했다가 수다로 이어진 상황이었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S는 사람이 왔다 갔으면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결혼과 출신은 자신에게 먼 일이라고 말했다. 거기서 흔적은 ‘자식’을 뜻하는 듯했다. 나는 한번도 죽은 후 이 세계에 내 흔적이 남아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굳이 남겨야 한다면... 

나는 문득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글을 쓰면 흔적이 남습니다.”


S는 그날 이후 매일 내가 했던 이 말에 대해 생각한다고 했다. 정작 나는 잊고 있던 말이다. 사실 흔적을 남기려는 쪽은 S였으므로, 내게는 큰 의미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또 매일 생각한다고 하니, 그 생각이 내게도 전염되어 나또한 종종 흔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2.

며칠 전 한 작가 지원 공모에 함께 당선되어 같은 공간에서 작업하던 작가님께 연락이 왔다. 문득 내가 어떤 작품을 쓰는지 궁금하다면서 만나서 작품을 교환해서 읽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는 대본을 한 장에 한 페이지씩 단면 인쇄로 출력해서 읽는다면서 그렇게 해서 교환하자는 것이다. (이러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그 부분은 생략한다.)나 또한 그의 작품이 궁금하던 터라 나가기로 했다.     


만나서 밥을 먹고, 두 시간 반쯤? 서로 작품을 교환해서 읽고 다시 만났다. 나는 그의 작품이 다소 장황하나, 매력적인 부분이 있어서 그것을 중점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사실 자세한 지적을 하기는 어려웠다. 그런 식으로 한번 읽어서는 집히는 것이 크게 없었다. 단지 그 이야기의 매력을 살린다면 더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는 내 작품을 혹평했다. 전형적이다. 나라는 작가뿐만 아니라 누가 와서 써도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이다. 이 말들이 내겐 다른 어떤 말보다 혹평으로 들렸다. 그가 내게 궁금했던 것은 다른 누구와도 차별화된, 나라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색깔이었다고 했다. 물론 전형성의 틀을 따라가는 길도 있다고 했다. 그것이 당장 메이드되는 데 유리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선진적이지 않은 길이라고 단언했다.      


사실 나는 작가주의 작품을 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전형적인, 누구나 잘 쓸 수 있는 작품을 쓸 생각도 없다. 대중적 틀 안에서 나라는 작가로 빛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는 중이다. 그래서 그의 혹평이 내게 무거운 숙제로 남았다. 속된말로 뼈를 제대로 맞았다고 해야하나. 사실 최근에 그 방향성이 희미해진 것도 사실이다. 작가 지원 공모 막바지 3개월간 작품 수정을 위해 거의 다시 쓰다시피 하는 작업을 했고, 10월 29일날 제출 후 탈진 상태로 근 일주일간은 반쯤 몽롱한 상태이기도 했다.      


그날 이후 매일 그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누구나 잘 쓸 수 있는 이야기 말고, 나만 잘 쓸 수 있는 이야기. 작가지원공모 당선자들 중에서 하필 그런 가치관을 갖고 있는 그가 내게 연락을 했고, 가장 내게 아픈 이런 화두를 던져주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마음 놓지 말라.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내게 채찍질이라도 하는 것일까.                    



3.     

다시 흔적으로.

     

어쨌든 내가 작가가 된다면 내 작품은 세상에 남게 된다. 잊혀져 어느 아카이브 한쪽에 먼지가 쌓여있다가 폐기처분이 되든, 아니면 이런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어딘가 한 줄이든. 결국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문제.     


2018년 2월 어느날.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시작된 질문이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다.


“내가 너라면 왜 이 작품이 공모전에 떨어질까 의구심이 들 것 같아.”


드라마 보조작가를 하던 시절 메인작가였던 분께서 내게 했던 말. 실제로 나는 그 대본이 그래도 운이 좋다면 가작정도엔 당선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 이런저런 공모전에 계속해서 내보고 있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내가 그에게 물었다. 그가 말했다.


“있을 건 다 있어. 있을 건 다 있는데... 초반 여덟 페이지 안에 너라는 작가가 안 보여.”


그런데 그날, 작품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내게 있다고 느꼈다. 나조차도 내가 어떤 작가인지모른다는 것. 넌 무엇을 잘 쓰냐, 어떤 글을 쓰냐라는 질문이 늘 당황스럽다.



4.     

다시 치열하게 나라는 작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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