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건전한 에고이스트

221006_철학 입문자의 NOTE

by 오랜
“인간이 ‘나’로서 말하기를 시작한 그날부터 인간은 그의 사랑하는 자기를 그가 할 수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전면에 내세우고, 이기주의/자기[중심]주의는 멈추지 않고 전진한다. 만약 (그럴 경우에는 타인의 이기주의가 그에게 저항할 것이기 때문에) 그가 공공연하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역시 그럴듯한 자기부정과 거짓된 겸손으로써 타인의 판단에서 더욱더 확실하게 우월한 가치를 얻기 위해서 숨기는 것이다.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 임마누엘 칸트, 아카넷, p119)”


책의 각주에 여기서 언급되는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의 원어가 “Egoism”이라고 쓰였다. 여기서 ego는 라틴어로 ‘나’(혹은 자아)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래서 이 강의의 강사이신 이현복 선생님께서는 에고이즘이 이기주의의 의미로 널리 쓰이는 사회 보편의 인식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신다. 말의 뜻 그래도 하면 ‘나주의’. ‘자신주의’ (혹은 자아주의?) 정도로 해석될 에고이즘이 ‘자기중심주의’,‘이기주의’라는 다소 이질적인 단어로 쓰이기 때문이다.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에는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신의 이익을 찾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뉘앙스가 있다. 그러나 ‘나주의’ ‘자기주의’에 부정적 뉘앙스가 더해지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 선생님의 이 발언을 듣고 있으면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자기중심주의와 구분되는 나주의, 자신주의의 의미는 무엇인가?


선생님은 여기서 과거 루소의 어떤 저작을 수업하실 때 강조하셨다는(어떤 책인지는 잊으셨다고 한다) ‘자기애’의 개념을 말씀하신다. 자기애가 없으면 자기 존재를 유지할 수 없다. 자기 존재를 유지할 수 없다면 자기가 파괴, 즉 소멸된다. 모든 존재자는 그래서 자기애가 필수적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 선생님께서는 자기주의란 결국 자기애를 갖는 가치관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에고이즘을 우리는 부정적으로 인식하는가? 이것은 기독교의 영향이라고 한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교의 기본 윤리이다. 그리도교가 서양의 중세 문화에 끼친 영향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말이다.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대목은 이웃을 사랑하라에 대한 선생님의 해석이다. 만약 인간이 자기 자신을 사랑함으로 충만하다면 신에게 의지할 필요가 있는가? 인간에게 신이 필요한 이유는 자기애의 부족 때문이라는 논리다.


그러고 보면 비단 이기주의, 에고이즘만이 아니라 ‘자기애’에도 부정적 뉘앙스를 띄는가? 집안에 자기 사진을 커다랗게 걸어 놓는 등의 행동이 웃음거리가 되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지나친 자기애를 가진 사람들을 비웃는다. 심지어 지나친 자기애는 타인에게 불편을 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자기애적 인격장애들을 피해다니는데, 이유는 그들이 가진 어떤 특징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의 주장대로라면 에고이즘과 자기애는 참으로 건전한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를 사랑함으로써 충만하여,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완전히 독립된 존재로 자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내가 추구하는 삶 또한 그런 것이다. 남들과 다른 삶을 만들어온 나의 역사의 배경엔 이러한 생각이 깔려있다. 나를 바로 세우고, 스스로 충만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이러한 나의 가치관과 종교를 멀리하는 나의 취향이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에고이즘에 대한 선생님의 주장을 곱씹어보는 과정에 내가 지향하는 삶이 에고이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부정적 뉘앙스의 에고이스트 말고,

나 자신을 (적절히) 사랑하는, 건전한 에고이스트.



*강의 인용


[철학 명저 제대로 읽기 : 칸트<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

(2022.9 / 고양 아람누리 문예아카데미 / 강사 : 이현복)

keyword
이전 09화칸트, 초면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