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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 Nov 16. 2022

이름을 부를 자유

1029참사를 기억하는 법 _2022.11.15



10.29 참사는 날이 갈수록 확장되어 여러 가지 논란을 만들고 있다. 결국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하는 부분일 것이다. 흔히 ‘꼬리자르기’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양상이다. 왜 그곳에서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이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지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들은 그곳의 안전을 지켜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권한을 가진 사람들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데,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불합리한 흐름 속에 또 다른 죽음을 만나기도 했다. 어김없이 세월호가 떠오른다. 참사를 다루는 성숙한 방식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이러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같은 모습을 보아야 할 것 같다. 아니다. 우선은 이러한 참사를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먼저다.     


어제 아침에 트위터 알림에 10.29 참사 희생자 명단이라는 이미지가 떴다. 누군가 자신의 개인 SNS에 올린 이미지인데 ‘민들레’라는 낯선 시민 언론사에서 공개한 것이다. 반가운 마음이었다. 그것을 들여다보며 한 명 한 명 이름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문득 이 많은 사람들의 유족을 찾아내서 동의를 받은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만약 동의를 받지 못했다면 희생자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을 두고 ‘개인정보보호법’을 언급했던 현 정치에 의해 또다른 논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철학 수업을 들으러 다니다가 다소 늦은 시간에 귀가했다. 다시금 그 사진을 보면서 이름을 공개하고 그들을 부르며 추모와 애도를 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싶어서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 화면으로 설정하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문구를 써넣었다. 강의하고 있는 학원의 학부모부터 학생들까지 모두 볼 수 있는 카카오톡 프로필이라 조심스러웠으나 오히려 그들과 함께 다시 추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내려버렸다. 


명단 공개는 유족의 동의를 받지 못했고, 그래서 시민언론 민들레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당 의원 발언의 기사를 아침에 보았다.  논란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자체가 희생자분들과 유족들에게 폐가 될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상황을 판단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과거엔 상식이었던 일이 현재에는 그렇지 않은 일이 될 때가 있다. 

사회가 나가면서 의식이 성장하면서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의 경우는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이다. 국민의 추모공간을 열 때에 유족들을 모으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영정이든 위폐 등을 달고, 공간의 명칭을 정했어야 한다. 그것은 오로지 정부와 국가의 몫이다. 그러나 그들은 국민의 슬픔을 통제하고, 정보를 가로막고, 유족을 한 데 모으기를 거부했다. 우리는 158명의 죽음 안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기억할 자유마저 박탈 당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죽음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은 그들이 죽음을 정치에 이용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 2차 가해라고 말하는 여당 정치인과 장관의 발언이 있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름 공개를 '논란'으로 만든 그 자체가 2차 가해가 아닌가? 갑작스레 잃은 소중한 가족의 죽음에 슬퍼할 유족들은 위축되어있을 것이다. 혹시나 자신의 선택이 잃어버린 이들의 마지막에 해를 끼치진 않을까. 그런데 이름이 공개된 것만으로도 이런저런 논란이 되는 상황이 더욱 그들을 힘들게 하고 있지 않겠는가?           




민주당 대표 이재명 의원이 유족 6명을 만나 면담했다. 유족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말을 들어 당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의도다. 이를 보도한 기사에 당시 만났던 유족들의 말을 전했다. (22.11.14 서울신문 보도)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이 국민 속에 기억됐으면 좋겠는데
대부분 공개되지 않아 답답하다.      



명단 공개의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점에 대해선 이해한다. 그러나 법적 책임에 2차 가해 운운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제라도 그들의 의견을 듣고 제대로 된 애도와 추모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고인에 대한 진정한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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