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의 가치_221228
00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드라마를 틀어 놓고 누워서 보던 중이었다. 졸음이 밀려와 잠을 자볼까, 안경을 벗으려는데 창문 밖에서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마치 머리 위에서 나는 듯 아주 가까운 소리였다.
집이 공항이나 공군 근처에 있는 것이 아니다. 6년 넘게 사는 동안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다. 문득 북한군 무인기가 우리 영공을 침투했다는 기사를 본 것이 떠올랐다. 포털에 비행기 소리라고 검색해 보았으나 비행기 소리에 관한 아무런 기사가 없었다. 트위터를 열어서 비행기 소리라고 검색하니 자신도 들었다는 트윗하나가 보였다. 그것이 비행기가 아니라 전투기 소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무인기가 침투했다는 헤드라인은 보았으나 기사 내용을 자세히 읽지 않았던 터였다. 무인기를 격추하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기사 말이다. 게다가 우리 공군이 대응 전투기 비행을 하려다가 추락했다. 비상 상황에 NSC도 열지 않은 대통령은 북한에 무인기를 보내라는 명령을 군에 내렸다면서 “확전을 각오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확전이라니. 이건 동네 애들 패싸움이 아닌데.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들은 전투기로 추정되는 비행기 소리의 실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잠이 들 것 같지가 았았다. 트위터에 나와 같은 상태인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이 시간에 전투기 소리에 덜덜 떨고 있는데, 재난 문자 한 통 띄우지 않고 아무런 보도도 없다면서.
나는 가족과 지인에게 문자하기 시작했다. 고향인 부산 경남 쪽에 살고 있는 지인들이었다. 방금 전투기 소리를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 아침에 뉴스를 꼭 보라. 만약 전쟁이 난다면 그들보다 내가 휴전선 근처에 살으니 정보를 더 빨리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트위터는 난리인데 기사는 소름끼치게 조용했다. 매일 날씨가 춥다며 매일 보내오던 재난 문자도 잠잠했다. 문득 재난 방송은 KBS에서 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KBS 실시간 방송을 틀어보았다. 새벽시간대라 재방송이 송출되고 있었다. 소리를 죽이고 이따금씩 열어 보면서 속보가 있는지 확인했다.
누군가 맘카페에서 본 댓글을 캡쳐해서 올렸다. “이모부가 대령이신데 여쭈어 보니 비상이라고 급히 부대에 갔다고만 했어요 (...)” 경찰서에 신고한 주민들이 받았다는 답변도 올라왔다. 고양시 인근의 모 군부대에서 훈련을 한다는 정보였다. 둘 중에 신빙성이 있다면 맘카페보다는 경찰서 쪽이겠지만, 말한 그 부대는 육군보병부대인데 거기에 전투기가 있는지, 육군 보병과 전투기가 관련이 있는 건지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더욱 불안해져 다시 구글과 네이버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전투기 소리, 비행기 소리와 더불어 화재, 폭격, 북한군까지도 내 검색어에 등장했다. 머릿속은 더욱더 흉흉해져갔다. 급기야 구글에 north korea라는 검색어를 입력하기에 이르렀다.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그래도 기댈 곳은 외신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짧은 영어로 훑어보아도 관련된 기사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새벽 2시 가까운 시간까지 어떤 정보들이 올라오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긴 시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정보를 얻기 위한 모든 것을 중단하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어딘가에서 전투기 소리가 들리는지 계속해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원룸이라 머리맡에 놓여 있는 냉장고 소리만이 크게 들릴 뿐이었다. 슬슬 졸음이 몰려왔다. 잠에 빠져들려는데 냉장고 소리 너머로 다시 전투기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아닌가? 그냥 바람 소리인가? 냉장고 소리가 졸음에 왜곡되어서 들리는 것인가? 아님 환청인가?!
그러다 잠이 든 것 같다.
눈을 뜨니 아무 일도 없는 아침이었다. 잠이 덜깬 채로 전투기 소리라고 검색해보았다. 마침내 기사가 떴다. 미상의 항적이 공군의 레이더에 보착되어서 비상이 걸려 공군이 전투기를 띄웠다는 뉴스다. 그럼 고양시 인근 육군부대가 훈련한다는 경찰발 정보는 무엇인가. 경찰서에서 나온 정보보다 맘카페가 더 정확했다니! 참으로 기막힌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