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 <활활발발>
- 작가가 되겠다거나 책을 출판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나의 답변에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럼 왜 여기 앉아 있냐는 의문을 가졌을까, 아니면 이렇게나 무뚝뚝하고 생뚱맞은 대답을 하는 나를 확 흔들고 싶은 오기를 느꼈을까. 어떤 생각이 그 하고많은 강좌들 중에 나를 <책이 되는 글쓰기>로 이끌었는지 명확히 말할 수는 없다. 도민대학의 강좌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에 대한 궁금증,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이라면 굳이 글쓰기 강좌가 아니었어도 되는 거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여름방학 숙제로 독후감을 써내야 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누구에게도 배워보지 않은 나는 동화책 뒤에 수록된 줄거리 간추리기를 또 간추려 냈다. 그런데 하필 그 독후감으로 내 생애 최초의 상을 받아버렸다. 큰딸의 상에 흥분한 아빠는 60권짜리 <계몽사 소년소녀문학전집>을 덜컥 사들였다. 책장에 두 줄로 진열된 오렌지색 양장 커버의 책들과 아빠 엄마의 기대 어린 눈빛이 나를 책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청소년 시기, 취미란에 그나마 ‘독서’라는 글자를 채워 넣을 수 있어 다행이었을 뿐, 나의 읽기에 대해서나 쓰기에 대해서 그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나 용감하게, 어찌 보면 무모하게 나는 그녀의 <책이 되는 글쓰기> 강좌를 듣고, 매주 한 편의 글을 과제로 써냈다. 살면서 나의 글이 도마에 올라본 적 없었는데, 내가 빡쳐서 쓴 글 <문 선생님께>를 읽고 재미있어하는 수강생들의 반응이 신기했다. 다정하고 성실한 그녀의 피드백에 고무되고, 수강생들의 반응에 힘을 얻어가며 4주의 강좌를 끝냈다.
그게 결말이었다면 나의 글쓰기 세상도 막을 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강좌는 고탄력 영양크림처럼 쫀쫀하고, 촘촘한 그물 같아 수강생들이 흩어지지 않고 후속 모임을 원했다.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해봐야겠지, 언젠가 슬쩍 발 빼기 좋게 한 발만 담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합평모임 글섬>이다. 첫 모임에 10 명 정도가 참석해서 같이 그 섬으로 넘어가나 했는데, 실제로 입도한 <글섬> 주민은 5명. 아이쿠! 한 발 빼기가 어려운 숫자다. 나의 판단 미스인가.
2주에 한 번, 반드시 글을 제출하고 합평에 참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글 쓰기의 어려움. 이제까지 끄적였던 글들이 나만 읽는, 일기나 낙서 정도의 글이었다면 지금은 내 글의 확실한 독자 4명을 상정하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인 그녀와 수준 높은 독자인 그들에게 내 글이 형편없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글을 쓰는 내내 관통하는 나의 바람이다.
또 하나, 내 글이 내 맘에도 흡족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좋은 책 한 권이 나를 성장시키듯, 글을 쓰며 나도 성장하는 글을 쓰고 싶다. 타인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글은 어떤 것일까,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은 많아져가고, 그럴수록 글쓰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중이다.
글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가장 어려운 건 타인의 글을 읽고 면전에서 평을 한다는 것이다. 각자의 글에 스며든 삶의 순간들, 글을 써내기까지 겪어야 했을 부침을 존중하며 예의는 갖추되, 그를 위해서 명징한 피드백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의 처음 독자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들여 글을 읽고 공들여 비평을 한다. .......
-어딘 <활활발발> 중
살짝 고백하자면 나는 합평 과정을 거치며 많은 걸 배워나간다. 독자를 매혹시키는 문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통일성을 주는 구조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울림을 주는 문장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배운다.
그들의 글에 등장하는 무심한 듯 다정하고, 느슨한 듯 단단한 인물들의 매력에 홀딱 빠져드는 즐거움도 있다. 그들의 다른 글 속 어디에서 그들이 불쑥 명품 조연으로 등장하게 될까 찾아보게 되는 쫄깃한 맛이 있다.
또 크게 달라진 건 나의 독서 태도다. 음악을 즐기는 사람과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음악을 감상하는 차이랄까?(너무 과한 비유라면 용서를...) 이전까지는 일단 호불호를 가리고, 좋아하는 작품을 골랐다면 흡수하고 소화하기에 집중했던 독자였다면, 이제는 언어라는 재료를 가지고 작가가 얼마나 치열하게 갈고닦았는지를 살핀다는 것, 주제를 끌고 가는 탄탄한 구조와 치밀한 문단 구성에 작가가 들인 저 너머의 고뇌를 보게 되었다.
언제였더라, 글섬 3개월 즈음이었나? 이 섬에 사람은 나 하나고, 나머지는 다 인간종이 아니라 글쓰기 요정들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디에서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이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나 <글섬>에 모여들었다. 합평 모임을 주도하고, 다른 강의에서도 매주 만나던 그녀를 제외하고는 2주에 한 번 합평 모임에서만 얼굴을 보이고,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이라 현실감이 없었다고나 할까? (정말 저처럼 먹고 자고 싸는 사람들인 거, 맞죠?)
각자의 세계로 표표히 돌아가
좌충우돌 동분서주 삶을 살다가
..... 한 편의 글을 품고 다시 만난다.
- 어딘 <활활발발> 중
모임을 하다 보면 그 생명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감이 올 때가 있다. 큰일이다. 이 섬 주민들은 끈질기기가 쇠심줄 같은 데다가 심지어 성실하기까지 해서 아주 오래갈 것 같다. 그전에 분명 내 글의 바닥이 드러날 것이다. 바닥이 드러나면 그때 나는 이 섬을 떠나야겠지? 그때 글쓰기의 압박을 벗어난 시원함이 클지, 나의 글쓰기요정들과 헤어진다는 섭섭함이 더 클지, 아직은 가늠질이 불가하다.
이 이야기가
다음 이야기를 불러올 수 있도록,
각각의 이야기가 만나
대서사의 강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우리는
가장 꼼꼼하고 가장 정직한 피드백을 서로에게 예의를 갖춰 한다.
- 어딘 <활활발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