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다 우리의 하늘 Viva la vida

시 <그리운 바다 성산포>, <하늘이 보이는 때>, <하늘>, <하늘은>

by 평온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 이생진 시 <그리운 바다 성산포> 중

바다는 그런 힘이 있나 봐. 세상의 슬픔을 남모르게 껴안아 주는 힘. 쉿! 비밀이야! 여기서는 울어도 돼. 괜찮아. 소리 질러도 돼. 철썩이는 파도 소리에 묻힐 거야. 터질 듯 터지지 않는 마음속 갑갑함이 목을 통해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더 크게 외쳐봐. 나의 울부짖음이 내 귀에도 들리지 않는다니까.


흩뿌리는 눈물 따위 겨울바람에 날려버려. 그리고는 세상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처럼 시치미 뚝 떼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가는 거야. 그러다 가끔 돌고래가 폴짝 뛰어오르기라도 하면 내 눈물이 주는 보상처럼 느껴지기도 하지.

바다는 또 그런 힘이 있나 봐. 다시 시작해 보라고 등 떠밀어 주는 힘. 헤이! 기죽지 마. 어제의 페이지는 덮고, 오늘의 페이지를 펼쳐. 저 파도도 어제의 그 파도가 아니야. 바다 위로 뜨기 시작하는 해를 보면 오늘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잘 써 내려갈 에너지가 생기지. 햇빛을 받아 은갈치 수천 마리가 너울대듯 반짝이는 윤슬을 볼 때면 풍어에 어깨 춤추는 어부라도 된 것처럼 신이 나지.


바닷바람에 머리가 날리다 모자가 날리다 내 마음속 찌꺼기마저 날아가는 날, 그런 날은 나도 고양이들처럼 동네를 어슬렁거릴 거야. 오늘의 페이지는 이미 기분 좋은 산책으로 한 줄 시작했고, 경쾌한 스타카토로 써 내려갈 예정이야. 1년 동안 고생했다. 너도, 나도!


하늘은
늘 열리어 있습니다만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 메마르지 않은 사람에게만
하늘은 보이는 것입니다.
- 이복숙 시 <하늘이 보이는 때> 중


여기저기 강좌를 다니다 보면 타지에서 이주해 온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되지. 그들이 모두 제주 바다에 마음을 뺏길 거 같지? 근데 정작 그들이 흥분하는 건 하늘과 구름이더라. 빌딩 숲에 가려 시간에 쫓겨 하늘을 잊고 살다가 끝없이 펼쳐진 파아란 하늘에 탄성을 지르고 구름이 펼치는 마술쇼에 환장들을 하지. 그런 친구들 덕분에 나도 덩달아 하늘과 구름을 보며 고개를 쳐들고 걷기도 해.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큰애의 서울살이 2년 차에 마땅한 집을 못 구해 고시원을 알아보고 있었어. 엄마, 창 있는 방이랑 없는 방이랑 월세가 많이 차이 나. 근데 창 없는 방에는 도저히 살 수가 없겠어. 그래 창은 있어야지. 숨은 쉬어야지. ‘창’을 가진다는 게 ‘돈’의 차이라는 걸 나는 처음 알았어. 가난한 이들에게는 창마저 허락되지 않는 현실이 슬프기도 했지. 그러고 보면 창과 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삶의 호흡기관이고 그 자체가 숨 쉬는 공기일지도 몰라.


그래도 딸, 가끔 창이 없고 하늘이 안 보여도 불안해하지 않길 바란다. 이게 끝일 거라고, 너의 삶의 기본값일 거라는 생각이 지배하더라도 그건 아니야. 그럴 때는 뛰쳐나가.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우박이 치더라도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렴. 보이지? 하늘이 있어.


어떻게 하늘이 푸르기만 하겠어? 대낮에도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덮어 세상마저 캄캄할 때면 외로움도 서러움도 내 몫이라면 견뎌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 그럴 때는 수행에 나선 수도승처럼 묵묵히 겸허히 기다릴 거야. 먹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이 펼쳐지기를. 먹구름 따위가 창공을 영원히 가질 수 없다는 걸 우린 알고 있잖아.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붙이고, 두 팔은 하늘을 향해 뻗어봐. 너와 내가 나무가 되는 거야. 비가 오면 빗물을, 해가 나면 태양빛을 온몸으로 쏙쏙 빨아들여 생의 에너지로 만들어 보자. 우리 모두 나무가 되고 숲이 되자.

친구야 길을 가다 지치면 하늘을 봐.
하늘은 바라보라고 있는 거야.
사는 일은 무엇보다도 힘든 일이니까
살다 보면 지치기도 하겠지만
그러더라도 그러더라도 체념의
고개를 떨구지 말라고
희망마저 포기해 웃음마저
잃지 말라고
하늘은 저리 높은 곳에 있는 거야.
- 이동식 시 <하늘> 중

평생을 바다를 끼고 살아왔는데, 매일같이 제주의 하늘을 보며 살아왔는데 요즘처럼 하늘과 바다에 마음을 준 적은 없는 것 같아. 감동을 말해주는 친구들을 만나고, 내 마음이 여유로워진 덕분이겠지.


바동바동 거리며 살아온 나는 오늘 바다를 보고, 하늘을 보며 하늘하늘 걸어볼 거야. 밤새 불 밝혀 고기잡이에 나섰던 배가 지금은 바당 구석에 매여 찰바당 찰바당거리고 있네. 너도 밤새 고생 많았겠다. 로베르 브레송의 유명한 말 <현실로 현실 수선하기>의 최고봉은 바다와 하늘바라기가 아닐까? 나의 바다가, 우리의 하늘이 해지고, 상처 입었던 삶을 기워주고, 윤이 나게 닦아주고 있네. 어제는 잊었고, 내일은 모르겠으니, 오늘 하루만은 이렇게 바다와 하늘, 그리고 나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

VIVA LA VIDA!


이해인 수녀의 시 <나의 하늘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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