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거실 탁자를 바꾸고 싶어, 사고 싶어, 살 거야! 내가 산다고 하면 뭐라 할 사람도 없는데 나 혼자 매일 가족들에게 통보하듯이 중얼거리며 다니는 중이다. 지금 쓰는 탁자는 3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당근으로 산 4인 탁자이다. 심하게 튼튼한(^^) 브라운색의 원목 탁자로 딱히 불만일 건 없지만, 더 세련되고 하이그로시한 6인 탁자를 사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문제는 그때마다 내 마음의 검열관이 딴지를 건다는 사실. 정말 필요해? 서재에도 기다란 책상 있고, 아이방에도 책상 있잖아. 세 사람이 살면서 6인용 탁자 둬서 뭐 할 건데? 그럼 이 탁자는 또 당근에 내놔? 그러면서까지 교체해야 해?
'필요해'와 '욕심이야'가 편을 갈라 계속 내 머릿속에서 싸우고 있다. 사실 몇 년 전, 무선청소기와 건조기를 살 때도 이 싸움이 몇 달 지속되었다. 머릿속에서 “필요해” 편이 완승을 거둘 때까지 나는 구매를 미루고 미룬다. 다들 그런 품목들 하나씩은 있지 않나?
친구 오여사는 기특한 자식 자랑 하듯, 이번에 산 로봇청소기 영상을 보여 주었다. 로봇 청소기와 영혼을 나누는 단계까지 도달한 듯, 예뻐 죽겠단다. 식기세척기도, 로봇청소기도, 음식물처리기도 주부들에게는 필요라는 X축과 욕구라는 Y축, 어딘가에서 분명한 점의 좌표로 깜빡거리며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엄마를 고개 들어 쳐다봐야 했던 어린 시절, 나는 어서어서 자라서 엄마처럼 지갑을 가진 어른이 되고 싶었다. 엄마의 빨간 지갑은, 내가 꼬꼬마일 때 티브이에서 방영하던 미국 드라마 <내 사랑 지니>의 요술항아리나 다름없었다. 지갑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 누구도 나에게 돈을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돈'에 대해 얘기해 주지 않았다. 그렇게 돈이 든 지갑을 가지고 싶어 했던 꼬마는 '돈'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건 좀 속물 같다는 생각마저 하는 젊은이가 되었다.
2000년대 초,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한 카드회사 광고는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렇게 노골적인 광고는 처음이었다. 이전까지는 동경하지만, 가질 수 없기에 '신 포도'일 거라 생각하는 여우처럼 ‘부자’하면 조금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놀부, 혹은 스크루지 영감 같은 이미지를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제 부자가 되라는 말이 세상 최고의 덕담이 되는 사회가 되었다.
'번창하세요. 성공하세요'라고 써 보냈던 개업식 화분의 문구는 '돈 세다 잠들게 하소서, 건물주가 되는 그날까지..'등으로 바뀌었다. 그뿐인가.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는 아파트 광고, 돈 벌어서 쇠고기 먹자 대신 <성공하면 ○○○ 사야지>라는 자동차 광고까지 이렇게나 있는 것을 과시하고. 부자들의 세계를 동경하고 목표하게 만드는 시대를 만나고 있다.
알다시피, 우리 사회는
청춘들이 10억을 꿈꾸는 사회다.
비단 청춘뿐이랴. 재벌에서 구의원까지 사회 전체가 온통 ‘돈타령’이다.
돈이 인생의 주인이라는 걸
거침없이 토로해 댄다.
헌데, 정작 자신의 돈, 그리고 그것의 구체적 쓰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 고미숙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이렇게나 돈이 노골적인 욕망이 되어 버린 세상에, 나는 지갑을 가진 어른이 되었으나 어릴 적 생각했던 드라마틱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가난한 (심지어 아빠도 없는) 노동자의 딸이, 땅을 일굴 줄만 알았지 투자의 대상으로는 보지 않는 정직한 농부의 아들과 결혼했으니 너무 뻔하지 않은가.
일상적인 고단함과 가끔의 비참함에 꺾이며 벌어들인 돈으로 삶을 일구어 나간다는 보람은 찰나이고, 손에 쥔 모래알처럼 스르르 빠져나가 버리는, 쥘 수 없는 돈이라는 것에 마음을 베이며 살아야 했다.
사는 곳, 몰고 다니는 차, 입고 있는 옷 등 외적 이미지로 나의 값을 매기고, ‘영수증’이 나를 설명할 수 있다는 시대. 온갖 비리를 저지른 김여사를 욕하면서도 그가 입은 옷과 들고 있는 가방의 견적을 내고, 기어코 완판 시키는 소비 사회의 정점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나의 행위가 가치를 말하도록, 나의 가치가 행위를 규정하도록 현명한 소비에 대한, 늦었지만 진지한 고민을 해 본다.
좋은 그림책을 사 모은다. 독립 서점들에 들어가면 꼭 두세 권의 책을 사고 온다. 귀한 그림책 작가들이 사라지고, 좋은 그림책이 절판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소중하고 귀한 독립 서점들이 정말 독립적으로 설 수 있도록 기원하는 마음으로 소비의 기쁨을 누린다.
먹을 걸 피부에 양보하지 않고, 피부에 투자할 돈이 있으면 제철 맛난 음식을 행복하게 먹는다.
피부과는 돈 아까워 못 가지만, 친구들과 가는 여행과 콘서트는 하나도 아깝지 않다. (다음 주, 부산 조용필 콘서트를 기다리는 5인방)
조금 많이 무리하면 명품 가방 하나쯤 눈 딱 감고 12개월 할부로 구입할 수도 있으나 에코백 메고 다니는 걸 선택할 때 그건 돈의 문제만은 아니다. 공정무역 커피와 로컬 음식을 구매할 때 그건 건강만의 문제는 아니다.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의 표현인 동시에, 지속 가능한 세상을 향한 문제의식이다. 혼자 ‘배부르게 나이 드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의지이다.
미다스의 손이란 다들 알다시피
만지는 족족 황금이 되는
신화 속의 왕이다.
생각만 해도 황홀하다구? 과연 그럴까? 왕의 손이 닿자마자
아내도, 친구도, 신하도
다 황금이 되어 버리는걸.
그리고 더 결정적으로 식탁 위의 모든 음식마저 황금이 되었다. 오 마이 갓! 결국 그는 굶어 죽었다.
황금이 삶을 몽땅 먹어 치우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이야기다.
- 고미숙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