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세상을 차단해버리고 싶은
충동은 언제 닥치며,
그 진정한 동기는 무엇인가?
당신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낫기 위해서인가, 숨기 위해서인가?
- 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중
생각해 보면 늘 그랬어. 중 3 때던가, 현숙인지, 현주인지 이름도 잊었네. 내가 먼저 그 애를 좋아했거든. 그 있잖아, 보이시하면서 명랑만화 주인공 같은 발랄 그 자체인 여자애. 학기 초부터 호감이 가더라. 친해지고 싶었어. 나의 까칠한 발톱도 잘 숨기고 다가갔지. 그러다가 서로 많이 친해졌다 싶은 순간, 난 그 애를 멀리 했어. 이유가 뭐냐고? 특별한 이유는 없었던 거 같아. 기억도 잘 안 나.
고등학교 가서도 그런 관계가 계속되더라. 먼저 다가서고, 먼저 멀어지는 패턴의 반복.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먼저 떠날 채비를 하고, 나누고 싶은 말들을 잃고, 눈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게 힘들어져. 상대의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나는, 상대와 눈을 마주치는 게 너무 버거워지는 순간이 오면 느끼지. 이제 이 관계는 끝이구나. 항상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 내가 나쁜 년이니까, 관계를 망치는 악역은 언제나 나니까.
나 있지, 그 패턴을 또 반복하려나 봐. 모임이 버거워지고 있어. 의욕도, 기대도 빵빵한 풍선만 했었는데, 보이지 않는 틈으로 바람이 빠져 어느덧 쪼그매지고 쪼골쪼골해져 버렸어. 조금 더 있음 바닥에 달라붙어 납작해질 판이야.
어느 날인가 그 애가 내게 묻더라, 언니라고 불러도 되냐고. 안 된다고 할 걸 그러지 못했어. 나는 사람 사귀는 게 어렵고 두려운 편이야. 사람을 만나 서로 합을 맞춰 나가며 쓰는 에너지 소비가 남보다 큰 것 같아. 그래도 이제 나이가 좀 들었으니 내가 좀 변한 줄 알았거든. 아니었어. 그냥 기분에 취했었나 봐. 나도 어쩌면 걔네들과 함께 언니, 동생 하며 지낼 수 있는 사회성을 이제서야, 드디어 갖췄다고 생각했었나 봐. 미쳤지, 내가! 사람 그렇게 쉽게 변할 리가 없는데, 어째 아직도 난 나를 이렇게나 모르는 거니.
- 언니 언니! 선이 님 남편이 00 병원 원장이래. 대단하지!
- 주희 님은 부모님 어떤 일 도와주고 있어요? 궁금해요.
‘언니’라는 호칭을 서로에게 허락한 순간,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져 버렸어. 남편뿐 아니라 부모의 직업까지 꼬치꼬치 묻는 무례함을 장착하고, 그날의 헤어와 의상, 피부과 이야기로 수다를 이어가더라고. 아침부터 소식을 전해오는 카톡. 수시로 밥 먹자고 보내오는 문자. 솔직히 영화도 호들갑스러운 그 애의 비명 때문에 신경 쓰여서 같이 못 보겠어. 갈수록 모임이 끝나면 나의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려 기운마저 없어질 지경이야.
다른 사람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도록 허락하면 그들이 반드시 나를 실망시키거나 다치게 할 거라는 확신,
스스로가 취약해지는 것이
너무 싫다는 생각.
- 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중
이제 알았어. 난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예민해지고 갑갑해져. 피하라고, 나를 아는 척하며 예의를 상실해 가는 사람들로부터 빨리 멀어지라고, 경계경보가 삑삑 울려. 조금만 떨어져 달라고 말하고 싶어. 남편, 아이, 부모, 그런 이름들 다 빼고 나를 얘기하려고 모임을 하는 건데, 군더더기가 너무 붙어 버렸어. 난 친목을 목적으로 그 모임을 하는 게 아니야. 그런 모임은 나에게도 차고 넘쳐. 공부하고 서로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모임이 아니라면, 나에게 무람없이 경계 없이 계속 이럴 거면 난 그 모임을 떠날 거야.
이제라도 그들에게 선명하게 말해야겠다. 나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게 좋아. 나의 이름과 나이와 직업, 가족, 아이, 그 무엇도 걸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나로, 나를 해체시키고 다시 재구성해주는, 내가 지은 닉네임으로 불러 주라는 말을 다음에 꼭 해야겠어..
이제야 나의 이별 공식을 알았네. 난 거리 유지가 중요한 사람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