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두 우주의 만남

그림책 <메두사 엄마>

by 평온

세상 밖으로 나를 드러내는 게 힘들고, 아직 어떤 ‘나’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던 시절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정성을 다해 키우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다섯 남매의 맏이로 책임은 무거웠고, 사랑은 느껴보지 못했던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을 내 아이에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가 버거울 때도 많았습니다. 뉴스에서 무참한 소식들을 접할 때면, 어쩌자고 나는 이 험한 세상에 아이를 낳는 무모함을 저질렀을까 싶었습니다. 나를 보며 방긋 웃는 아이가 예뻐 죽겠다가도, 이 어리디 어린 생명이 전적으로 어미인 나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덜컥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메두사 엄마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자기 키보다 훨씬 긴,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이웃과 떨어져 외로이 살아가던 메두사 엄마에게 딸 이리제는 고독한 섬 위에 뜬 영롱한 무지개이면서 (이리제: 프랑스어로 '무지갯빛'이라는 뜻), 정신 바짝 차리고 자기 손으로 지켜 내야 할 보석 같은 존재였을 겁니다.

"너는 나의 진주야.
내가 너의 조가비가 되어 줄게."
- <메두사 엄마> 중


내 아이를 ‘진주’로, 나는 껍데기에 불과한 조가비가 되어도 기꺼운 마음, 엄마라면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상처 입을까 아이에게서 눈을 못 뗍니다. 이웃에게 딸 이리제를 자랑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 손길이 닿는 건 싫습니다. 긴 머리카락으로 아이를 감싸고 땅에 내려놓지 못하는 메두사의 모습은 나와도 닮아 있었습니다.


엄마의 사랑을 촉촉한 비처럼, 따스한 햇살처럼 받은 아이는 한여름 수박 영글듯, 매일 쑥쑥 자라납니다. 엄마의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와 엄마의 머리칼 둥지에서 자고, 머리칼이 떠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바닷물 속에서 첫걸음마를 뗀 이리제가 이제 바깥세상으로 눈을 돌릴 만큼 성장했네요. 학교에 가고 싶어 하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창문으로 해변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너 학교에 가고...... 싶니?"
"가도 돼요?"
(중략)

“아니, 엄마는 따라오지 말아요. 엄마를 보면 아이들이 모두 무서워해요.”
(중략)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형, 언니, 오빠, 누나,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시간이에요.

“이리제!”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엄마!”

-<메두사 엄마> 중

집 안에 갇혀 산파에게도 얼굴을 보이지 않던 메두사가 아이를 키우며 이웃을 만나고 얼굴을 내보입니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아이를 학교에 보냅니다.


이리제를 학교에 보낸 메두사는, 아이를 학교에 데리러 가기 위해 자기의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사람들이 가득 찬 교실까지 이리제를 데리러 갑니다. 가벼워진 머리카락으로 서로 활짝 웃으며 안고 안기는 모습은 예상치 못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도 엄마로 다시 태어납니다.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엄마도 성장해 나갑니다. 아이를 위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 사랑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자 동력이 맞는 듯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만남 역시
다른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두 우주가 만나는 일이다.
한 우주가 다른 우주를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
- <메두사 엄마> 작가
키티 크라우더의 말


‘유퀴즈 뇌과학자 편’에서 본 내용인데요, 애초에 사람은 나보다 남을 더 사랑할 수도, 그를 위해 희생할 수도 없는 동물이라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의 뇌를 연구했더니 ‘자기’의 개념을 확장시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엄마라면 이해가 충분히 되는 내용일 겁니다.


그런 자기 확장이 지나쳐 나와 자녀를 동일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아이도 하나의 우주라는 걸 잊지는 않았는지, 혹시 그 우주를 들여다보느라 나의 우주는 황무지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우주가 부딪치는 일은 없어야겠죠? 충돌하고 폭발하는 충격은 두 존재, 두 우주 모두 자멸하는 길이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전 아직도 '엄마'라는 역할이 버거울 때가 많습니다. 서른 넘은 딸의 엄마 노릇은 처음이라 힘들고, 사춘기를 맞은 둘째의 엄마 노릇도 시대가 많이 달라져서 그런지 첫째 때랑 많이 달라 저 혼자 아무도 몰래 허둥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나’의 우주와 ‘아이’의 우주가 만났음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아이의 우주를 나의 식민지로 삼으려 하지 않겠습니다. 가능하지 않은 일에, 둘 다 불행해지고 말 일에 에너지를 쏟지 않으려고요.


아이의 우주가 아름다운 행성들로 반짝이길 빌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우주를 정성껏 가꿔 나가겠습니다. 푸르른 나무가 숲을 이루고, 온갖 동물들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곳. 그리하여 꽃이 만발한 내 우주의 향기가, 숲이 우거진 내 우주의 공기가 아이의 우주까지 번져 나가길 바라겠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날, 나의 우주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씨가 아이의 우주까지 날아가 꽃을 피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희망사항 정도는 욕심부려도 되겠지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