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영업맨이 되었습니다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by 평온

학원을 넘겼다. 그 당시 학원생이 백 명을 넘었으니 실패한 일은 아니었음에도, 어떤 패배의식에 한동안 짓눌려 있었다. 다른 학원에서 경력을 쌓고 난 후에 했으면 어땠을까, 좀 더 나이 들어서 했으면 좋았을 걸. 넉넉한 자본이 있어서 교사를 충원하고 신박한 시설을 갖출 수 있었으면 지치지 않고 신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따위의 상념들을 이불처럼 둘둘 말고 뒹굴거리기만 했다.

떠나보지 못한 자는 떠날 줄을 모른다. 잘 놀 줄도 모르고, 일을 해야 에너지가 증기기관차의 연기처럼 뿜어져 나오는 나는 한 달 만에, 전에 다니던 P라는 학습지 회사에 재입사했다. 가르치고, 학부모 상담하는 거야 도가 텄을 때이니 입사 9개월 만에 팀장 제의가 들어왔다.


P회사는 작은 회사가 아니었다. 그런 회사의 정규직 팀장이 되고, 국장까지 승진할 수 있다면 교사가 되지 못한,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나 스스로에 대한 위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이들을 잘 가르쳐 보고 싶다는 業보다는 학원 원장, 한 회사의 팀장, 국장이라는 직책을 더 선망하는 인간이었나 보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나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 나의 욕구, 나의 의지가 아니라 엄마의 체면, 나에 대한 타인들의 평판이 기준이었구나 싶다.

팀장 면접을 볼 때 국장의 조건은 화장이었다. 오케이를 했고, 3명의 지원자 중 팀장이 되었다. 헤어, 메이크업 같은 건 결혼식 당일 날 딱 하루 해 본 나는 매일 아침 화장을 하고 다니는 삶, 정확히는 지금껏 살아오며 만들어온 ‘나’라는 정체성을 매일 파운데이션과 립스틱으로 덮으며 지내는 삶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이수연 그림책 <어쩌다 보니 가구를 팝니다> 중

화장 따위, 100년도 할 수 있다. 심각한 문제는 나는 “영업적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사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회사와 교사 사이의 좋은 연결고리가 되고 싶다는, 나의 '팀장'으로서의 역할 설정은 순진한 것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습지 회사에서 책임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팀장 발령 바로 다음 날 아침, 파사삭 깨졌다.

<실적표>. 전국 단위 백 여개가 넘는 팀들의 실적표와 우리 지역 8개 팀의 실적표가 내 자리에 놓이는 순간 나는 영업맨으로 개조되었다. 개조된 나는 교사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팀장이 아니라, 교사들의 고충 제조기 팀장이 되었다. 회사는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계속 성장만을 외치는 보이지 않는 과물이었다. 국장은 팀장을 쪼면 실적이 나온다 생각했고, 팀장은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회사를 실제 먹여 살리는 노동자인 교사를 회원 증원의 수단으로만 대했다. 매일이 괴로운 직책이었다.


마피아도 조직원을 뽑을 때는 순응적이고 착한 사람을
선호한다고 한다.
마피아 조직원도 직원이다.
직원은
조직의 지시를 잘 따라야 한다. ...
그러니 반골이나 반항아보다는
권위에 순종하는
말 잘 듣는 신참이 환영받을 것이다.
-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중


게다가 나는 철저히 ‘권위’에 복종하는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릴 때 엄마의 말에 순종하며 살아온 나는 학교 때 교사의 말을 듣는 학생이었듯, 국장의 말에 언제나 예스로 대답하는 직장인이었다. 팀장일을 하다 보면, 팀 내 교사의 각종 사고로 대신 수업을 나가는 일이 생긴다. 하루아침에 가방 놓고 떠난 교사의 뒷수습도 해야 한다. 성실치 못하거나 미숙한 교사로 인한 학부모의 전화에 대고 연신 사과를 한다. 이런 일들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지나면 웃을 수도 있는 일이다.


가장 힘든 건, 지금 생각해도 가장 부끄러운 일은 가짜회원을 등록하는 것이다. 지국의 실적을 위해, 혹은 국장의 해외연수 시상을 위해 유령회원을 집어넣는 것이다. 유령이지만 회비를 발생시킨다. 회비는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오는가? 교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내 주머니에서 나왔다. 회사는, 국장은 모른 척 그 성장과 실적을 즐길 뿐이었다. 내가 감당했다 해서 그 허위와 거짓의 기억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짜 회원을 만들다 내가 가짜가 되는 자리, 일하는 여성 교사들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커피는 그렇다 치고,
사람의 좋은 성질은 처음에 우러날까, 아니면 최후에 우러날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물의 참된 성격은 오직 시련을 통해서만 드러난다고 믿었고,
그 믿음에 따라 그리스 비극을 만들었다. 그들이 믿었던 것처럼,
상황이 좋을 때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이다.
상황이 나쁠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문제다.....
나는 언제나
내 안의 최악이 두려웠다
-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중


지국 내에 팀장이 다섯, 우리 지역 내에 10여 명의 팀장이 있었지만 동료 의식은 없었다. 그들은 실적을 다투는 경쟁 상대였지, 동료가 아니었다. 언제 나올지도 알 수 없는 단 하나의 자리를 두고 의자 뺏기 놀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국장의 눈 밖에 나서도 안 되었다. 누군가 칭찬받거나 실적이 좋으면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어 질겅질겅 씹혔다. 다정하게 다가갈 줄도 모르고, 징징거리며 하소연도 못하는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바위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냥 굴러갈 줄만 알았지, 멈출 생각도, 의지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불규칙한 식사와 밤늦은 시간의 음주로 몸무게는 매일 최고치를 경신했고, 스트레스로 방광염이 도지고, 명치는 건드리기만 해도 죽을 듯 아팠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0시, 11시에 퇴근하면서 번 돈을 유령회원 회비로 회사에 바치던 시절, 그러면서 ‘다 수업료라 생각하자. 지국장만 되면 다 돌려받을 수 있는 수업료’라 위안하며 그 억울함을 달랬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 책임을 다하고 , 성실히 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여전히 욕심 많은 맹꽁이였던 나는 시간을 걸고, 청춘을 걸고, 잘해보자는 의욕은 충만했으나, 삶 전체를 두고 일을 배분하고 가족과의 삶을 고민하며 살지는 못했다. ‘다정은 체력에서 나온다’고, 체력을 직장에서 다 써버린 나는 집에 돌아오면 가시 돋친 아내로, 무심한 엄마로 지냈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어떤 시간이 온다. 어느 높이까지는 올라가야 보이는 경치가 있듯이. 때가 되어서야 도달하는 깨달음. 내가 얼마나 허겁지겁 살고 있는지, 얼마나 빈약하게 삶을 꾸리고 있는지 보이는 순간들. 앞으로도 이런 전쟁을 몇 년 더 겪어야 되는구나. 그전에 내가 쓰러지고 말겠구나 하는 각성의 순간. 나는 팀장 5년 차에 그들만의 리그, 의자 뺏기 놀이를 그만두었다.



(※ 벌써 20년 전 일입니다. 요즘은 회사 풍토가 많이 달라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냥 제 맘에 묻어두었던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생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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