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온 <1인칭 가난>
겨우 잠들었는데 창문을 따닥따닥 때리고, 덜컹덜컹 흔드는 소리에 깨고 말았다. 아파트 입구만 나가면 해안이라 다른 곳보다 바람이 세긴 하지만 오늘 밤은 유독 더하다. 2026년 시작이 참 매섭네 싶지만, 뭐 겨울은 원래 이런 거 아닌가 생각하며 보일러 온도를 더 높이고 눈을 감았다. 깜빡 잠들었다 싶은데 벌써 아침. 일단 남편 출근하는 거 보고, 아이 아침을 챙기고 다시 누웠다, 겨울에는 참가하는 오전 수업이 없어 게으름을 맘껏 피워본다. E-book으로 보는 소설이 재미있어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읽어나갔다. 그러다 1시, 이제 출근을 하려고 나가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날씨가 매섭군. 폭설로 출근길이 난리였다는 건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오기 전, 아침저녁으로 편도 3~40분의 거리를 오갔다. 그때는 태풍이나 폭설이 닥칠 때마다 초긴장 상태였다. 출퇴근을 어찌해야 할지, 아예 영업을 못하겠다고 공지해야 할지 새벽에도 여러 번 잤다 깼다를 반복하며 바깥을 살폈다. 이사한 후 남편은 5분, 나는 7분 거리에 사무실이 있고, 막내는 아파트 입구 앞 학교에 다니니 날씨가 어떻든 맘이 편하다. 그러다 보니 바깥 날씨를 나가기 전까지는 잘 모를 때가 많다.
주변을 살핀다는 건 그런 건가 보다. 내가 그 상황에 놓여 있을 때는 노심초사하며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지낸다. 문제는 거기에서 멀어지면 살피는 마음도 멀어진다는 것, 혹시 나는 그렇게 주변의 어려움과 비틀거림에서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다.
어제 모임에서 매화 언니가 조용히 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 주었다. 양 쪽으로 중년의 부부와 그들의 자녀가 마주 보고 앉아있는 모습, 누가 봐도 상견례 자리다. 와~ 축하한다며 결혼식은 언제냐 물었더니 이걸로 끝이란다. 아들 부부의 단호한 결정과 양쪽 부모님의 합의로 결혼식은 생략하고, 상견례 후에 살림을 합쳐 살고 있단다. 집도 자기들이 모은 돈으로 구하고, 살림도 조금씩 늘려갈 거라며 부모의 도움을 거절했다고 한다. 우리는 훌륭하고 대견하다며 박수를 쳤다.
종합병원 간호사였던 언니는 이직 후, 나와 같은 회사를 다니며 만났다. 내가 그 회사를 떠나던 날, 고맙게도 나와의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어 한 분 셋과 함께 <매난국죽> 모임이 탄생했다. 그게 벌써 20년 전이다. 지난해 환갑을 맞은 매화 언니는 근검절약 성실 자기 관리의 끝판왕이다. 샤워할 때 쓰는 수돗물 요금을 계산했다는 말에는 혀를 내두른다. 그녀가 꺾어왔다며 선물로 주는 고사리 세 팩을 받을 때는 정말 뒤로 넘어간다. 다른 분들은 고사리를 데친 후 그냥 덩어리 채로 주는데, 그녀는 위쪽과 아래쪽을 맞춰서 가지런히 눕힌 고사리 세 팩을 건네주니, 매년 받는데 매 번 혀를 내두른다.
그런 언니의 딸, 아들로 자라서일까? 서울살이 자취하며 전기요금 때문에 주인과 한바탕 했다는 딸, 어릴 때부터 일단 수중에 들어온 돈은 나가는 법이 없다던 아들까지 근검절약의 DNA가 유전된 듯하다. 그런데다 공부까지 잘해 번듯한 직장인들로 살아가고 있으니 족히 매화 언니의 자랑이 될 만하다. 젊은 부부가 탄탄한 직장이 있고, 자신들의 노동으로 하나씩 하나씩 살림을 장만하며 살겠다니 내 자식이 아닌데도 자랑스럽고 기뻤다.
매화 언니는 자기의 발보다 두 치수 큰 신발을 신는다. 발가락 부분이 기형적으로 생겨서 크지 않으면 아파서 걸을 수가 없단다. 한경면 시골에서 살던 언니는 어릴 적, 한창 발이 클 시기에 고무신을 신고 다녔는데, 너무 가난해서 고무신이 찢어지기 전까지는 신발을 사주지 않아 발을 우겨놓고 학교에 가고, 밭일을 했단다. 그러다 보니 발이 제 모양을 갖추지 못하고 신발 모양으로 커버렸다. 여행을 자주 하는 우리는 언니의 발을 볼 때마다 언니의 가난했던 시절을 자동으로 떠올린다.
학교는 기회의 평등이 있다고 가르쳤지만, 사회로 나온 내게
기회는 숨어 있었고
평등은 마음속에만 사는 단어였다.
삶을 비관하는 방법을
스무 개 이상 배워서
스무 살이 된 것 같았다.
- 안온 <1인칭 가난> 중
요즘 ‘가난 밈 meme’이 유행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점심으로 라면과 김밥을 먹으며 ‘지긋지긋한 가난’을 말하고 있지만, 그 옆에 다소곳이 놓인 고가의 시계와 슈퍼카 열쇠는 그 사진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것임을 확연히 드러낸다. 그 사진 밑으로는 ‘저도 그 가난, 물려받고 싶네요.’라는 댓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순간 나는 모멸감을 느꼈다. 가난은 그렇게 얘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은 웃자고 하는 농담이라고 하지만, 가난이 현재진행형인 이들에게는 조롱이고 돌멩이고 아픔이다. 가난은 매화 언니의 고무신 속에서 기형적으로 자라 버린 발처럼 구체이고 실질이며 실체이다..
지금 바깥을 휘감는 강풍과 폭설이 누군가에게는 스키를 떠올리고 설산을 그리는 낭만적 풍경이겠지만, 온몸으로 바람과 눈을 마주해야 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그날의 일용할 양식을, 심하게는 목숨을 앗아가는 괴물일지도 모른다. 가난은 그러하다. 미디어를 통해 보는 가난은 <응답하라 1988>의 낭만일 수 있으나, 가난을 온몸으로 통과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하루하루가 힘겨운 전쟁의 연속인 것이다. 그들의 안간힘을 모를 수는 있으나 일회성 웃음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난주에 친구의 펜션에서 하루를 보내고 아침에 보니 저쪽 텃밭 구석에 투명한 돔 모양의 텐트 같은 게 보였다. 안 보던 거라 뭐냐고 물었더니 길고양이들 숙소란다. 고양이들은 생각보다 추위를 많이 탄다는 말을 듣고 길고양이 가족들의 겨울나기를 위해 작년 11월에 텐트를 구입했다는 것이다. 저쪽에는 커다란 수탉 두 마리도 보인다. 모두 어디선가 와서 친구 부부가 주는 먹이를 먹으며 생츄어리처럼 지내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세상 제일 좋아하는 친구 부부이지만 그날 이후 나는 그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그럴 수 있는 존재이다. 종이 달라도, 사는 환경이 달라도 아픔을 공감하는 태도, 나는 가난밈 뉴스를 보며 그게 참 많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