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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Oct 31. 2023

텍스트 소비자

책은 확실히 안 읽는 거 같다. 내 주변 온통 직장인뿐이라서 그럴 수도 있는데, 지하철이나 공항에서 둘러봐도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대게 휴대폰을 보고 있거나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두 가지인데, 집에서 읽나 싶어 설문을 해봐도 집에선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본다고 하지 책을 읽는다는 사람은 근자에 들어본 역사가 없다.


바야흐로 영상의 시대이다. 이제 사람들은 손안에 티브이에 몰입한다. 비싸게 주고 산 스마트폰으로 숏폼 보면서 폰값을 충당한다. 그런데 텍스트는, 텍스트 콘텐츠는 즐길 게 없는가.


웹 소설이 있다. 지하철에서 관찰해 보면 휴대폰으로 웹 소설을 보는 사람은 더러 있는 것 같다. 나이 드신 분들도 글자체를 크게 해서 무협소설을 읽고 있는 모습도 본 적이 있다. 웹 소설은 그래도 소비가 잘 된다. 소재가 자극적이고, 전개도 빠르고, 캐릭터는 매력적이며, 묘사도 단순해서 인기가 있겠지.


포르노 같은 매력이 아닐까. 인간의 욕구를 그대로 적나라하게 까놓고 다루다보니 사람들의 구미를 한 번에 당길 수 있다. 싸움 킹왕짱, 단박에 부자 된 사내, 최강 레벨 게이머, 한번 살아본 인생. 딱, 들어도 확, 당기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그런 걸 좋아한다. 소설은 그렇다 치고 다른 건 없나.


영상은 영화도 있고, 드라마도 있고, 예능도 있고, 뭐가 많은데 텍스트가 할 수 있는 콘텐츠는 웹 소설 말고 뭐 더 없나. 즐길 거리 말이다. 아, 기사. 기사도 요즘은 자극적으로 쏟아내니까 정보 지식 전달 외에 사람들의 엔도르핀을 뽑아내는 요소가 많다. 그리고 또 에세이. 이혼하고 퇴사하고 망한 이야기나 여행하고 맛있는 거 먹고 혼자 살고 둘이 살고 셋이 사는, 남들 사는 이야기. 그런 게 있다.


시각은 인간이 원래 가진 원초적인 수단임에 반해, 문자는 인간이 만든 발명품이기 때문에 호르몬 분비를 즉각적으로 뽑아내는 수단으로써 차이가 있다. 야한 장면을 눈으로 보는 것과 글로 읽는 것의 차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래서 텍스트 콘텐츠는 비주얼 콘텐츠에 밀릴 수밖에 없다. 자극이 차원이 다르다.


그래도 책은 책대로 엄청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데 말이다. 사고하고 상상하는 것을 무한하게 담을 수 있는 게 바로 책이고, 텍스트인데. 시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까지 텍스트는 그게 되는데. 책에서 매력을 느낀 사람은 계속 찾으나, 경험이 없는 사람은 끝까지 모른다. 그 중간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 록 음악의 세계에 빠지게 된 건 미국 밴드 본조비 때문이었다. ‘Always’라는 록발라드 노래가 인기를 끌 때, 그걸 듣고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이루어진 음악을 찾고 찾아가다 보니, 너바나나 그린데이나 메탈리카로 이어지면서 록음악의 세계에 안착하게 되었다. 록키드가 되고 나서 나중에 본조비 음악을 다시 들어보니 아, 이건 록음악이 아니라 그저 나를 이쪽으로 인도해 준 미국 팝가수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 레벨의 연결고리. 그런 게 없나 고민해 본다.


내 자리를 찾아보려고 하는 시도인 셈이다. 문학계는 아직 발을 못 들이겠으니까, 공연장 밖 매표소 주변 어딘가에라도 내 자리가 없을까 고민하는 거, 그거 맞다.


대중성을 두루 겸비한 텍스트 콘텐츠 크리에이터.


지금은 그거 말고 내가 뭘 하겠는가.


일단 조금 더 고민해 보자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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