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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Oct 04. 2022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난 직장인

새벽 4시 30분. 휴대폰에서 김광민의 피아노 연주곡 ‘학교 가는 길’이 흘러나온다. 시끄러운 기계음 소리에 깨는 것이 싫어서 잔잔한 연주곡으로 알람을 설정해 두었다. 문제는 잠을 깨우는 효과가 조금 떨어진다는 것인데, 피아노의 잔잔한 선율은 마치 ‘일어날 시간이긴 한데, 뭐 큰 문제는 아니니까’라며 속삭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손목에 찬 스마트 워치에게 2차 출정을 미리 지시해두었다. 손목에서 윙윙 진동이 울린다. 그 언제더라 휴대폰이 나오기 전에 ‘삐삐’라는 웨어러블 기기를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들리던 삐빕! 삐빕!(주머니 속에 있기 때문에 선명하진 못한) 소리와 비슷한 효과음이 스마트 워치에서 울리기 시작한다. 즉시 처리해야 하는 타깃들이 생겼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알람을 모두 꺼야 한다. 이것이 오늘 나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이다.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간 심청이의 비보를 들은 심봉사가 허공에 양손을 뻗으며 "그럴 리 없어. 청아, 청이 어디 있니, 거기 있느냐?" 하며 더듬거리듯이, 두 눈은 감은 채 주변 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휴대폰을 찾는다. 휴대폰이 손에 잡히면, 옆면에 붙어 있는 물리 버튼을 재빠르게 꾹 눌러 첫 번째 타깃을 가볍게 제압하고, 손바닥을 크게 펴서 스마트 워치를 폭 덮는다(손바닥으로 스마트 워치의 액정을 덮어주면 앱이 종료되는 기능이 있다). 이로써 두 가지 모두 클리어. 그러나 알람을 한 번만 설정해 두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5분 간격으로 휴대폰과 스마트 워치가 계속 공격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내가 설정했으니까). 즉,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일단 일어나야 한다. 1차 공격에 대한 즉시 제압은 눈 감고도 가능했지만, 앞으로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액정을 들여다보며 설정된 알람을 하나씩 직접 다 취소해 주어야 한다.


일어나기 전에 몸 상태를 빠르게 체크한다. 지금 일어날 수 있는 상태인가,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각 신체기관들에게 “Are you ready?” 명령어를 보내고 피드백을 기다린다. “네 가능합니다. 어제 술을 안 마신 덕분인지 지금 모두 쌩쌩한 상태로 팔, 다리, 기타 모든 피지컬 상태 양호합니다”라는 보고가 접수된다. "오케이" 하며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모든 알람을 하나하나 해제한다. 그리고 다시 시계를 본다. 새벽 4시 35분(글로 표현해서 그렇지 실제로 이 모든 과정은 5분이면 끝이 난다). 욕실로 가서 간단한 가글링을 마치고 다시 방으로 가서 책상 앞 의자에 앉는다.


책상 위에 있는 탁상용 조명기기에 스위치를 누른다. 이케아에서 산 것인데 스위치가 널뛰기 모양과 같이 한쪽은 누워있고 다른 쪽은 솟아 있다. 위쪽 'ON' 버튼을 누르면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아래쪽 버튼이 위로 솟아 올라온다. 나는 이 ‘딸깍’ 소리가 주는 느낌을 좋아한다.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모두 마치고 ‘자 이제 켠다’ 한 후에 ‘딸깍’하고 스위치를 켜는 기분이 든다.


조명이 켜지면 곧바로 브리츠에서 출시한 블루투스 헤드셋을 쓴다. 너무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가격(한 6만 원 정도)으로 선택을 했는데, 제품의 퀄리티는 브리츠라는 브랜드에 전적으로 맡기고 구매했다(물론 구매 리뷰는 여러 개 검색해 보았다). 헤드셋이 귀 전체를 덮어줘서 주변음 차단이 잘되고 나름대로 최근에 나온 모델이라 음질도 나쁘지 않다. 이 제품은 내가 ‘블로그를 해볼까’하며 고민하던 시절에서 산 것이라 언박싱 리뷰를 올려본 적이 있는데, 출시 후 얼마 안 된 시점이라 그런지 조회수가 잘 나와서 아직도 해당 제품을 검색하면 내 후기가 꽤 상단에 노출되어 있다.


헤드셋과 휴대폰이 연결되면 미리 저장해둔 플레이리스트(피아노 연주곡들)를 재생한다. 같은 것만 계속 듣는 패턴은 나름 방법인데, 방에서나 지하철, 카페에서 모두 같은 음악을 들으면 그곳이 어디든 한곳으로 연결되는 시공간 초월(WARP) 현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창의적이고 집중이 필요한 작업을 할 때는 항상 같은 음악을 듣는다. 음악이 플레이되고 아이패드와 블루투스 키보드마저 페어링이 완료되면, 나는 어제 준비해둔 얼음이 가득 들어 있는 오설록 녹차를 한 모금 빨아 당긴다. 입천장에 차가운 것이 닿으면 ‘앗 차가워, 깜짝이야’하며 남아 있는 잠의 기운들이 모두 달아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스윽 키보드 위로 손을 올린다.  


미라클 모닝. 그렇다. 나는 그걸 하려고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앉은 것이다.  


아이패드 메모장에 ‘00월 00일 굿모닝_브런치 승인 거절, 이후 전략’('미라클 모닝'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오글거려서 나는 그냥 ‘굿모닝’이라고 이름 붙였다) 따위 제목을 넣고 생각나는 것 아무거나, 혹은 계획과 같은 것을 타이핑하기 시작한다. 반성 없는 반성문 쓰듯이 쿨하게 휘갈기며 생각을 정리한다. 누가 그랬다. 글쓰기는 머리가 가장 맑고 집중이 잘 되는 새벽이 좋다고. 물론 그것도 그거지만, 내 경우는 회사를 다니며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참 쉽지가 않고, 특히 퇴근 후에는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무언가 마음먹고 한다는 게 참 어렵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밤에는 일찍 자고 아침에 쏟아내자는 것이다.  


아침 글쓰기의 마지막은 항상 자기 암시로 끝을 낸다. ‘나는 할 수 있다’, ‘오늘을 선물받았다’, ‘감사하다’ 같은 문장을 적으며 스스로 계속 긍정적인 생각을 주입하는 것인데, 이건 여러 자기 계발서에서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방법이라 나도 해보고 있다. 아직 효과는 모르겠고 일단 하고 있다.  


시계를 본다. 새벽 5시 20분. 5시 30분부터 출근 준비를 하면 되니까 10분 남았다. 이제부터는 명상을 해야 한다. “자, 이제 파티는 끝났어”라고 선언하듯, 조명 'OFF' 스위치를 '딸깍' 누른다. 사방이 어둡고 조용하다. 의자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는다.


아직은 명상 초보라 호흡에 집중하는 것만 할 수 있다. 들어오는 숨과 나가는 숨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추적한다. 들숨 때는 배를 빵빵하게 부풀렸다가, 다시 내쉴 때는 뱃가죽을 거의 등에 닿게 하는 심정으로 깊게 내쉰다. 이렇게 집중을 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게 하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아침에는 조금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너무 길어질 경우 이게 명상 인지, 자는 것 인지 헷갈릴 수 있다. 호흡에 집중하지 못하고 잡념이 개입하거나, 점차 의식이 희미 해진다면 얼른 중단해야 한다. 그대로 자버리면 30분은 그냥 가버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명상 시간은 딱 10분으로 잡아두었다.


이제 새벽 5시 30분. 이제 씻고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헤드셋을 벗고 책상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자, 아무튼, 어쨌든, 하마터면,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출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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