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세이읽는남자 Oct 18. 2022

굿모닝 하는 직장인

근로계약이 있는 직장인의 경우,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에 8시간씩 회사에서 일을 해야 한다. 계약상으로 8시간이나 이것저것 소모되는 시간(출근을 준비하고 이동하는 시간이나 야근, 회식으로 사용하는 시간까지 모두 합하여 평균을 내면 거의 하루 10시간 이상)을 모두 감안하면 하루 중에 ‘나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시간’을 빼기가 쉽지 않다.


초등학생 때 만들어 봤을 법한 하루 시간표를 만들어 보았다. 퇴근 이후 시간을 쪼개고, 모아서 대략 2시간을 확보한 후 ‘나를 위한 시간’으로 정했다. 그리고 시간 맞춰서 책상에도 앉아 보았다. 그런데 회사에서 에너지를 모두 뽑아 쓰고, 남은 힘을 길바닥에 뿌리고 돌아오면 핑계가 아니라 정말 남은 에너지가 없다. 피곤하고, 기운도 없고, 집중이 안 된다. 그런 상태로 머릿속에서 창의적인 것을 뽑아낸다? 쉽지 않다. 오히려 원시인 같은 나의 뇌는 ‘오늘만 좀 쉬자’, ‘일단 맥주 한 잔’과 같은 오더를 내리기 시작했고, 그 즉시 도파민 군대가 대규모 파견되어 결국 원하는 것을 이루고야 말더라.


몇 번의 실패(아니, 대부분)를 맛보고 있던 그즈음에 발견한 책이 있는데, 할 엘로드의 ‘미라클 모닝’이었다. ‘아 이거지’, '그렇지 맞지' 무릎을 탁탁 치며 읽었다. 뇌는 아침이 가장 정리된 상태라고 한다. 숙면하는 동안 신체 배터리가 완충되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뽑기에 가장 좋다고 했다. 나는 다시 초등학생이 되어 시간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과 출근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시간을 계산해서 그 사이 1시간을 확보한 후, 최종 기상시간을 확정했다. 그리고 ‘미라클 모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따라 하는 기분이 들어서 ‘굿모닝’이라고 시간표에 적었다. 그리고 몇 가지 루틴을 의식적으로 만들었다. 가장 먼저 가글을 한다거나, 조명을 켜고, 헤드셋을 쓰고, 매번 같은 피아노 플레이리스트를 듣는 것들이다.


나의 ‘굿모닝’은 총 3가지를 순서대로 진행한다. 먼저 아이패드 메모장 어플로 일기를 쓰듯이 날짜와 제목을 입력한다. 간단하게 그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거나, 계획을 나열하거나, 아무런 아이디어를 생각나는 대로 기록한다. 그다음은 자기 암시를 한다(그렇게 하라고 책에 쓰여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창의적이고 대단한 사람이다’와 같은 조금 오그라드는 것들인데(어차피 내 아이패드는 항상 잠금으로 설정되어 있고, 오직 나만 해제할 수 있다), 이것은 다른 책들에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어서 그냥 따라 하고 있다. 메모를 마치고 아이패드의 ‘PAGE’ 어플('워드'나 '한글' 같은 거)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지금 읽고 있는 것과 같은 글들이다. 아침에는 글을 그냥 쭉쭉 쓴다. 이게 말이 되나 싶어도 무시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신나게 써 내려 간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에게 자랑하던 것이 하나 있었다. “야, 나는 잘못한 게 없어도 반성문 3장은 그냥 쓸 수 있어”라는 건데, 실제로 나는 반성문 쓰기가 세상에서 제일 쉬웠다. 특별한 주제나 묘사도 필요 없고 구구절절 사실관계와 내 생각을 적절히 섞어서 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같이 쓸데없이 글을 늘려서 쓰면, 분량은 넉넉하게 채울 수 있었다(최근에 웹 소설 한번 써보자며 아는 형을 꼬실 때 또 한 번 써먹었다. “형, 나는 그냥 써. 막 써. 나는 잘못한 게 없어도 반성문 3장은 그냥 쓰는 사람이야”)


그렇게 나는 '그냥 막 써 내려가는 글쓰기'는 어려움이 없다. 아침에 확보된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잘한 비문이나 오타는 수정하지 않고, 일단 아이디어를 쭉 늘어뜨려 키워드만 나열한다는 생각으로 쓴다. 수정과 검토는 주말의 나에게 밀어둔다. 그런데 의외로 아침에 막 적은 것들을 다시 읽어보면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 싶을 때가 많았다(통째로 지운 적도 많았지만)  


역시 할 엘로드님 말이 맞는 거 같다. 아침이 가장 창의적인 시간이다. 어느 에세이에서 혹은 유명 작가들 역시 아침이 가장 글쓰기 좋다고 하는 걸 보니 더욱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 시간을 ‘오직 나를 위한 시간’으로 정하고 현재까지도 계속 ‘굿모닝’을 하고 있다.


글쓰기의 장점은 건강 분야에서 규칙적인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만큼 뻔하고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인데, 직접 느껴본 것은 성인 되고 처음이다(싸이월드가 있긴 했는데 거긴 성찰 없는 과시용 글쓰기라 논외). 넘쳐나는 콘텐츠들로 인해 우리는 생각할 시간을 많이 빼앗기고 사는 것 같다. 멍 때릴 틈도 없이 유튜브나 SNS 짧은 영상들로 시간을 채운다. ‘음, 내가 왜 그랬을까?’는 생각을 할 시간도 없다. 그런데 글을 쓰면 내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들이 조금 구체화된다고 할까.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아, 나는 왜 자꾸 술을 마실까?’ 이런 주제로 글쓰기를 시작한다면 ‘옛날에 그 일 때문인가? 대학생 때였다’ 이렇게 시작할 때고 있고, ‘어제 책에서 읽었는데 도파민의 역할이 동기부여라고 한다’ 이렇게 갈 수도 있다. 원인을 찾거나, 스스로 답을 내거나, 아니면 다짐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글로 쓰지 않고 머리로 생각만 한다면 '음, 일단 이 문제는 오늘 한잔하면서 친구들한테 물어보자'가 되거나 다른 생각으로 금방 전환되어 버린다.


글쓰기를 하든, 명상을 하든, 운동을 하든, 무엇을 하든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만나는 시간을 오직 나를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전체 시간의 주인이 바로 나이고, 내가 지배한다는 것. 그것을 확인하고 실행하는 나만의 의식이랄까.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무언가 대단한(변호사 자격증을 딴다거나) 결과를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 쌓아가다 보면 뭐라도 작은 언덕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살짝 하고 있다(브런치 구독자가 50명이 된다거나)


그래서, 오늘도 나는 굿모닝!

작가의 이전글 출근길이 급하고 바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