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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Dec 05. 2022

일단 시작하고 꾸준히 하면 완성

“돌아가거라”


“제발 부탁입니다 도사님, 가르침을 주십시오”


“어허 이런 무례한 사람을 봤나. 나는 제자를 들일 생각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도사님. 저는 이미 살아도 산목숨이 아닙니다. 아니면 차라리 이 자리에서 저를 그냥 죽이십시오. 제자가 되지 못한다면 죽는 것이 낫습니다”


“어허 미치겠네. 무턱대고 찾아와서 제자를 삼아 달라니. 세상 원”


남자는 설날에 큰 절하듯 땅에 엎드려 가지런히 모은 두 손 위에 이마를 대고 있었고, 노인은 뒷짐을 지고 창문 밖 청계산 뷰를 바라보고 있었다.


“좋다. 일단 여기 앉아보거라”


고개를 든 남자가 ‘정말?’ 하는 듯이 반가운 표정으로 일어나서 사무실 소파에 앉았다.


“왜 나를 찾아왔는지 이유나 한번 들어보자”


“네, 도사님 저는 시나리오도 써보고, 웹소설도 써보고, 단편소설, 드라마 대본, 네이버 블로그, 카카오 브런치 뭐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하나 여태껏 터진 적이 없어서 혼자는 승산이 없을 것 같아 도사님의 제자로 들어가서 한번 제대로 배워보고자 염치 불고하고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되기 위해 지난달 퇴사도 했습니다. 저는 절박합니다. 저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자네가 왜 시나리오를 실패한 줄 아는가?”


“재밌는 이야기를 못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단편소설은 왜 실패한 줄 아는가?”


“제가 문장력이 딸리는 것 같습니다. 비유도 좀 약하고요”


“틀렸네”


“……”


“자네가 실패한 이유는 계속하지 않고 그만뒀기 때문이네”


그만뒀기 때문에 실패했다? 차를 멈췄기 때문에 도착하지 못했다. 결혼을 안 했기 때문에 애가 없다. 뭔가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말장난 같기도 했지만 일단 조금 더 들어보기로 했다.


“계속하지 않고 중간에 끊었기 때문에 결과가 없다는 말일세”


“맞습니다. 안될 것 같아서 중간에 그만뒀습니다. 도사님 밑에서 실력이 갖춰지면 다시 해볼 생각입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도사님”


“네이버 블로그는 어찌 되었나”


“지금은 안 하고 있습니다”


“카카오 브런치는?”


“뭐 뜨믄뜨믄”


“어느 것 하나도 꾸준히 하는 것이 없구먼. 그것이 자네 문젤세.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끊지 않고 계속해야 하네. 자네는 마음먹기까지는 참 잘하는 것 같은데, 꾸준하게 하는 것이 부족한 것 같구먼”


“네 맞습니다. 잘 안된다 싶으면 다른 쪽으로 건너갑니다. 안 되는 걸 오래 붙잡고 있는 것도 비효율이라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지금은 무엇으로 성공하고 싶은가”


“소설입니다. 소설이 터지면 웹소설, 웹툰, 영화, 드라마까지 확장성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꾸준히 계속 시도하면 되네”


“네, 그래도 문장이라거나 플롯이나 비유나 그런 도사님만의 꿀팁을 좀…”


“꿀?”


“네, 노하우 말입니다”


“음, 있지. 꿀팁”


“워워, 잠깐만요”


남자는 얼른 아이패드 프로를 꺼내서 능숙한 솜씨로 케이스 접어 패드를 세우고 책상 위에 올렸다. 매직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 후에 ‘자 이제 시작해도 좋아’라는 듯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노인을 보았다.


오늘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는데, 매일 아무 내용이나 본인이 정해서 적는다. 그리고 그 글이 2천 편이 되었을 때, 그토록 원하던 그 꿀맛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도사님의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펑! 하며 도사님은 사라졌고, 남자의 아이패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매일, 글쓰기, 2천 편, 개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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