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세이읽는남자 Dec 05. 2022

달에서 지구를 바라보듯 쿨하게

발각되었다. 어디서 정보가 샌 건지 알 순 없지만 나의 동선이 노출된 것은 분명했다. 아까부터 나를 미행하는 사내는 내가 낌새를 느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다. 여차하면 나를 붙잡기 위해 점점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힘껏 도망을 쳐야 하나 생각하니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젠장”


조직에 믿을 수 있는 인간이 남아있긴 한 건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지금은 탈출이 우선이다. 일단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야 한다. 군중과 섞여있다가 그놈의 시선이 분산되는 타이밍을 노려서 여길 빠져나가야 한다.


“이보게 청년”


갑자기 나를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네? 저 말씀이십니까?”


“바쁜 일 없으면 나 좀 도와주게나”


바쁜 일이 없다니요, 저 지금 곧 죽게 생겼습니다는 심정이었지만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오히려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편이 미행하는 녀석의 긴장을 풀 수 있고 그 틈에 도망칠 기회가 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네, 어르신 뭘 도와드릴까요”


“저기 앞에 뛰어가는 꼬마 보이는가”


노인이 팔을 쭉 뻗어 한 곳을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10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뛰어가고 있었다.


“저기 꽁지머리요? 보입니다”


“저 꼬마가 여태 내가 번 돈을 모두 훔쳐갔네, 가서 좀 잡아주게”


“네?”


벌건 대낮에 도둑질이라니, 그것도 어린아이가? 더 이상한 것은 노인의 태도다. 도둑맞은 피해자 답지 않다고나 할까. 적어도 ‘도둑이야! 저놈 잡아라’ 외치며 소란을 일으킬 것이지 이게 지나가는 사람에게 정중히 부탁할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하나, 빨리 가게”


“아…네”


노인의 다그침 덕분에 일단 나도 그 아이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뭐, 성격이 소심한 영감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내 입장에서도 미행하는 녀석과 거리를 벌릴 수 있는 기회기도 해서, ‘어이 거기 꼬마’ 하고 외치면서 아이를 따라갔다. 아이는 어느새 시장의 중앙통을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야, 이놈”


나도 아이를 따라 골목으로 턴을 향했다. 찬스다. 여기 어딘가에 내가 숨을 곳이나 미행을 따돌릴 방법이 생길 것 같았다. 그 노인 참으로 적절한 순간에 나를 도와준 귀인이다. 어쩌면 우리 쪽에서 심어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 됐든 나는 ‘꼬마 도둑을 잡고 있는 사람’이라는 명분을 얻었고 일부러 소리를 지르는 척까지 하며 좁은 골목을 휘젓고 다녔다.


아이는 작은 몸집을 십분 활용하여 좁은 골목에서 더 좁은 골목으로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그런데 아이의 움직임에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절박함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는 그저 무슨 놀이 마냥 도망 다녔다. 내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을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나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이리저리 움직이던 아이가 드디어 어느 허름한 식당 안으로 들어가더니 여닫이문을 꽝 닫았다. 나도 얼른 따라 들어가 방금 들어온 꼬마 봤냐며 물었다.


“꼬마? 들어왔지”


“네, 어디로 갔나요”


“저기 주방으로 가서 작은 문”


“그럼 실례 좀”


주방으로 들어가니 정말 문이 2개가 있었다. 큰 문은 열려 있어서 어느 집 마당 같은 것이 보였고, 작은 문은 도무지 용도를 알 수 없었다. 문을 안쪽으로 열자 높은 벽이 보였고 벽과 문 사이로 사람 하나 겨우 통과할 만한 공간이 오른쪽으로 쭉 이어져 있었다. 그 틈으로 진입하여 가고 있는데, 내가 들어온 문이 꽝하고 닫혔고 문을 잠그는 듯한 소리가 ‘철컹’ 하고 들렸다. 이젠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임을 직감했다. 벽에 등을 붙이고 옆으로 천천히 걸어서 끝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코너에서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니 드디어 방금 보다 조금 넓은 길이 나왔는데, 그곳에 그 꽁지머리 아이가 서있었다.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쉿, 조용히’라는 제스처 보냈다. 그래 이것은 나를 도와주기 위한 퍼포먼스임이 분명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아이가 빨간 비단 주머니를 건넸다. 받아 들고 주머니를 열어보니, 종이가 있었다. 꺼내어 읽어보았다.


‘달에서 지구를 바라보듯 쿨하게’

작가의 이전글 만원은 못 버려 한 시간은 버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