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어진 욕망
남들 다 찍는다는 그 손가락 사진 한 장 찍으러 왜 그 먼 길을 가야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손가락을 직접 만드는 체험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손가락 위를 걷는 것뿐인데. 비가 오자마자 카페로 직행해 쉬고 있는 '그녀석'을 뒤로하고, 나는 하루 2만 보 루틴을 채우기 위해 프랑스 마을을 뱅뱅 돌았다.
"너 전지훈련 왔냐? 극기훈련 하러 왔어?" 비아냥거리는 그녀석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본전을 뽑기 위해, 그리고 내 몸의 강박을 잠재우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길치인 나는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미아가 되지 않으려 빵조각을 떨어뜨린 헨젤과 그레텔의 심정으로 말이다. 그녀석이 도시락 와이파이를 갖고 있어서, 꼴도 보기 싫은 그녀석이 엄마라도 된 양 멀리 떠나지도 못하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도시락 와이파이는 나의 무선 목줄이다. 우리는 분명 둘이 왔지만, 서로 다른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는 하나에 종속된 여행.
저녁은 현지 맛집에 가고 싶었건만, 한 걸음도 걷지 않은 그녀석은 그놈의 '문명의 이기'를 운운하며 그랩(Grab) 배달을 시키자고 한다. 혈당 관리와 변비 예방을 위해 무조건 걸어야 하는 나지만, 돈줄을 쥐고 있는 그녀석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결국 타지까지 와서 한국에서도 흔한 배달 음식을 먹고는, 속상한 마음에 다시 미케비치로 나가 맨발 걷기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날까지 그녀석은 덥다며 호이안 일정을 취소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이발소에 갈 기회인가!' 조심스럽게 귀 파기와 각질 이야기를 꺼냈으나, 그녀석은 단칼에 거절했다. "그거 잠시뿐이야. 늙은 놈이 이 땡볕에 무슨 한시장까지 가?" 그러더니 넷플릭스와 게임에 빠져든다.
나는 결심했다. "나 미케비치나 좀 걷고 올게." 그녀석 몰래, 나는 '황X 이발관'의 그 아리따운 처자를 향해 길을 나섰다. 솔직히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유튜브가 심어준 환상과 내 뇌가 만들어낸 가공의 정보가 결합되어, 내 발걸음은 이미 이발소로 향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30분이면 갈 길을 2시간 넘게 헤맸다. 구글 지도는 내가 거꾸로 가는지 제대로 가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아까 봤던 강아지가 또 보이고, 나를 친구로 착각하는 듯한 노숙인이 또 아는 체를 한다. 땡볕 아래서 나는 거의 미아 직전이었다.
나는 10일의 변비 이후 수분 부족을 막으려고 물병을 손에 쥐고 움직인다. 걸으며 한 모금씩 마신다. 그런데 그 마신 물이 갑자기 반응이 온다. 정말 온몸에 땀이 난다. 물을 먹자니 앞이 문제고 물을 안 먹자니 뒤가 문제다. 정말 이거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지금은 앞이 문제다. 앞에는 내 뇌의 허락도 없이 나와서 문제, 뒤는 내 뇌의 부탁을 무시해서 문제. 앞뒤가 다 내 뇌를 무시한다. 이런 걸 전무후무라고 하는 모양이다. 지금은 '전현무'다. 앞에가 현재 무시한다는 말이다. 별의별 잡생각으로 앞의 급박함을 뇌에서 삭제를 하려 해도 별 소용이 없다. 나의 허무게그도 그냥 내게는 쓴 웃음으로 돌아오고 몸에는 땀이 난다. 아까 먹은 한 모금이 지금의 결과를 낳은 것, 한 모금 한 모금을 후회한다. 눈앞이 캄캄하다. 길을 잃은 상태에서 급한 소변... 이발소고 나발이고 이제는 화장실부터 찾아야 하는데, 어떤 더러운 상가의 화장실로 갔다. 들어가려는데 아줌마가 막고 서 있다. 돈 달라고 한다. 나는 돈이 잡히는 대로 지불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싸고 말 걸 그랬나? 아무도 모를 텐데. ㅠㅠ
결국 이발소는 근처도 못 간 상태에서 이미 공항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그녀의 존재는커녕 입구 구경도 못 하고 초죽음이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그놈의 '그랩' 앱만 깔 줄 알았어도 완전 범죄로 이발을 마쳤을 텐데!
"왜 카톡 안 봐? 너 와이파이 들고나가더니 진짜 이발소라도 다녀왔냐?" 핀잔 섞인 그녀석의 물음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풀지 못한 욕망과 고통을 가슴에 품은 채, 터벅터벅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