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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하 May 27. 2024

무조성 음악

틀을 깬다는 것

“현대 음악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있으면서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스스로 음악에 문외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무조음악의 선구자인 베베른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들었다고 가정합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익숙한 조성에서 벗어 난 선율이나 화음이 난해하다거나, 기껏해야 무섭다 정도의 감상평을 내어놓을 겁니다. (사실 조성이 없는 무조음악은 음악에 조애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무섭게 들릴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듣기 좋은 협화음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죠.) 정해진 조성 안에서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알을 깨고 만들기 시작한 것이 무조음악입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 불편한 무조음악을 듣고 있고 감상하고 있습니다. 혹시, 스릴러, 누아르, 공포 영화를 좋아하싶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미 이 틀을 벗어난 불편한 무조음악을 거부감 없이 잘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영화의 장면들은 무조음악과 교감하도록 도와주는 가교 역할을 합니다. 영화에서의 무조 음악들이 음악회에서 듣는 베베른이나 쉔베르크의 곡보다 더 파격적임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의 도움을 받아 의식 무의식 적으로 현대음악의 불협화음과 무조의 선율진행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죠. <셔터 아일랜드>, <이끼>, <신세계>, <샤이닝>, <퐁네프의 연인> 등 나열하기 버거울 정도로 많은 무조음악이 영화에서 활용됩니다.    

 그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미술의 거장 중의 하나인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보고, 사람들은 이 난해하면서도 단순한 그림이 백억 대의 낙찰가에 팔린다는 사실에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입니다. 이와는 달리, 중세시대 작품 안에는 무수한 인물과 사물 심지어는 동물까지 한꺼번에 나오며, 심지어 사람마다 동물마다 표정이 다르고 그 행동이 모두 다릅니다.  

  중세시대에는 그림이 관람객을 압도했습니다. 그림이 아무리 복잡해도 그림 속에 답이 보이죠. 다른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고 정답까지 알려주니 감상자도 마음이 편합니다. 반면에, 현대미술은 그림이 관객에게 ‘나 어때?’라고 질문을 합니다. 갑자기 불편합니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아예 대놓고 제목까지 물어봅니다. "내 제목이 뭔지 네가 알지?"라고 말이죠. 불분명한 형체와 선, 색감의 불균형, 명암과 크기의 부조화 등으로 감상자에게 연신 질문을 합니다. 수많은 질문에 당황하게 됩니다. 이에 외면하는 이도 생기죠.
 
사람들은 틀과 규범에 얽매이기 싫다고 말하면서 틀과 규범을 벗어난 것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바흐 미뉴엣>과 조성의 틀을 벗은 베베른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곡>을 비교하여 한 번 더 들어보세요.

당신의 일터는 답이 이미 정해져 있고 규범과 틀로만 이루어진 사회의 대표적인 장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곳에서 끊임없이 창의롭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요구받죠. 막상 틀을 깨는 아이디어를 처음 접하게 되면, 뭔가 불편하고 심지어 무식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라고 비웃음을 사게 될 수도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젊은 시절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특히, 매킨토시 마우스를 세상에 처음 내놓았을 때, ‘손이 세 개 있는 사람이 쓰는 컴퓨터’라고 빈정거렸습니다. 키보드에 올려놓은 두 손 움직이기도 바쁜데 하나를 더 추가하니 당장 불편했던 거죠. 그러나 잡스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래를 볼 줄 알았습니다.

   이제 기존의 시스템 밖에서 또 다른 형태의 시스템을 창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그것들을 받아들일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세계를 선도하려면 끊임없이 ‘다음은요?’라는 질문에 답을 해 줘야 합니다. 새로운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거나 잘 모르는 것일 수 있고, 이런 것을 선도하는 대열에 모두가 예술인과 같은 창의성을 가지고 이끌어 보면 어떨까요? 일정한 선율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만큼이나, 무조음악이 가지는 시스템 밖의 영역 또한 무한합니다. 이러한 세계를 이끌 잠재적 개척자들이 지금 바로 내 옆에서 활동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음 몇 세기를 이끌어 나갈 사람일지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덧붙임. <HRD 인사이트>에 기고한 필자의 글을 재편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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