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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하 Jun 10. 2024

예술과 경쟁사회

예술과 경쟁사회

클래식 분야에서 '경쟁'이라 하면 음악 콩쿠르가 떠오릅니다. 쇼팽 이전에는 콩쿠르가 없었습니다. 관객들의 호응과 입소문이 음악가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음악 콩쿠르가 탄생하면서부터, 전문가들의 영향력이 관객의 평가를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음악의 거장 바르톡은 “콩쿠르는 경주마들이나 하는 것이며, 예술가가 할 짓이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심사위원의 입맛에 맞춘 경쟁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상당수의 음악 저널에서도, 그의 주장이 인용되기도 합니다. 숫자로 점수를 매기는 콩쿠르 시스템과 이를 출세의 유일한 열쇠처럼 여기는 태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게재하고 있죠.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예술학교를 폄하했습니다. 클래식 영재들을 학점 경쟁의 울타리 안으로 몰아가는 시스템이 영 탐탁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는 음악학교를 ‘예술직업학교’라고 깎아내렸습니다.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갖게 되는 특수하고 신비한 체험을 숫자로 된 점수로 평가하며 가르칠 수 없다고 본 거죠. 톨스토이의 예술학교 무용론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예술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주장입니다.  (참고로, 안드레아 보첼리, 요요마, 장한나, 토마스 햄슨, 도밍고 등은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지 않고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음악가입니다.)

음악가는 스스로의 한계와 싸우며 고뇌하는 자들입니다. 이 것이 본질이죠. 피아니스트는 약지 손가락의 미숙한 터치에 고민하고, 성악가들은 불안정안 고음에 노심초사합니다. 이 때문에 좌절하고 극복하기를 반복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죽을 때까지 배우고 성장합니다. 자신과의 경쟁인 셈이죠.

비단, 음악분야뿐만이 아닙니다. 글로벌 소프트웨어 사업가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마이클 델, 이반 윌리엄스, 트래비스 칼라닉, 모두 다 대학교 중퇴자들입니다. 동료학생들이 A학점에 목숨 걸고 있을 때, 이들은 인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컴퓨터로 마음과 마음이 만나게 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싶어 했습니다. 우물 안, 코 앞의 경쟁보다는 '인류와의 대화와 소통'이라는 절대적 가치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들은 꿈을 이루었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예술이 스포츠가 아니 듯 기업(직장)도 경쟁에만 집중하는 경주마는 아닐 것입니다. 제품을 통해, "고객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줬는가? 그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는가?"라는 절대가치를 추구하려는 태도가 핵심입니다. 예술이나 사회나 본질을 추구해야 진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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