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 사제직을 박탈당하다
한 때 카톨릭 사제였습니다. 카톨릭 종교 재판에서 최종 사제박탈 결정을 받았습니다. 파면당했죠. 이유인 즉, 비발디가 엄숙한 미사 집례 중에 갑자기 성당 밖으로 나가버린 것입니다. 그러곤 자기 방으로 잽싸게 들어가 냅다 악보를 그려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악상이 떠오를 때 바로 악보에 그리지 않으면 머리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나가서 악보에 이를 담았고, 그 길로 사제로써의 소명을 접고 풀타임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당시 다른 음악가들도 장소만 다를 뿐 비발디와 유사한 행동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참으로 정상적인 생활하기가 힘들었을 듯싶습니다.
그가 성직자 시절에 작곡한 <12곡의 트리오 소나타, 1705년> 중 하나인 "라 폴리아(La follia)"를 감상해봅시다.
슈만,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결혼
그와 클라라의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는 익히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 과정은 막장 드라마 같았죠. 그의 아내 클라라는 슈만의 스승 비크의 딸입니다. 그들이 결혼하기 전 비크는 딸을 슈만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법원에 그를 "미성년자 유괴죄'로 고소했습니다. 실제 슈만은 클라라가 미성년자일 때부터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아홉 살의 나이 차가 났죠. 그녀의 아버지 비크가 슈만을 얼마나 싫어했던지 슈만을 알코올 중독자로 누명을 씌워 거짓 증언까지 했을 정도입니다. 슈만도 스승을 일종의 무고죄로 맞고소했습니다. 결국 슈만이 승소하여 클라라와의 결혼에 성공을 했습니다.
1839년 혼인소송 시기에 출품한 슈만의 <유모레스크> 중 첫 곡인 "Einfach"를 감상해봅시다.
헨델과 바그너, 음악계 신용불량자들
둘 다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이유는 빚을 갚지 못해서였죠. 헨델은 운영하던 오페라단이 쫄딱 망한 후 부채 폭탄을 감당하지 못하고 고소를 당하여 결국 교도소로 끌려갔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뇌졸중(중풍)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감옥에서 그의 걸작인 <메시아>를 작곡했다 하니 신이 보낸 음악가임에는 틀림없나 봅니다.
바그너는 30세에 <리엔치>라는 오페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부채로 인해,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도망 다니며 살았습니다. 생계형 빚을 진 것이죠. 한 번은 도망가기 위한 배에서 폭풍우를 만나 죽을 고비까지 넘겼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유난히 돈 많은 유부녀를 좋아하거나, 재력 있는 여자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여자를 음악자금 마련을 위한 후원자 정도 생각하지 않았나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악극'의 창시자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탄호이저> 등의 오페라가 그를 대표합니다. 그의 오페라들은 신화를 주제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총 연주 시간은 무려 4시간이나 될 만큼 장대한 스케일을 갖고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실황공연이 예정되어 있다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을 만큼 귀한 공연이니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쇼팽, 우아한 남성 음악가
“음악가는 괴짜다.”라는 통념을 깬 사람입니다. 죽을 때까지 단 한 명의 여인과 결혼을 했고,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헨델,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리스트 등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위대한 작곡가들은 모두 복잡한 여자관계, 괴팍한 성격, 문란한 사생활 중 하나 이상의 심각한 결함이 있었습니다. 반면 쇼팽은 ‘우아한 남성’으로 묘사되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피아노 작품들은 자신만의 개성이 뚜렷한 매력적인 선율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최고권위를 자랑하는 쇼팽 콩쿠르는 그가 작곡한 피아노곡들만으로 결승까지 경쟁합니다.
쇼팽의 피아노곡들은 거를 작품이 없을 만큼 환상적입니다. 가장 잘 알려진 그의 <21개의 녹턴> 중 2번 곡(Op.9, No. 2)을 감상해봅시다.